♣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가벼운 이사 / 김설진

시인 최주식 2010. 7. 28. 22:47

가벼운 이사 / 김설진

 

   

  봄바람이 벚꽃을 꺼내 놓은 날, 묵직한 포클레인이 무덤을 두드린다 이장을 서두르는

봄의 치맛자락이 포클레인에 걸려 찢어졌다

 

  아버지가 운전대를 붙잡고 저승으로 주소를 옮기던 날 과속으로 달리던 길이 멈춰섰다 길바닥에 벚꽃이 흩어지고 가족들의 울음만 그 뒤를 따라갔다 집을 허무는 포클레인 소리에 43년 어둠을 맴돌던 묵은 한숨이 터져 나온다 미안타, 고맙다, 반색을 하는 아버지 제복에 훈장을 달고 구령에 맞춰 걸어 나온다 외아들 군기만은 잡지 못한 훈련소 교관, 삶의 대열에서 낙오했던 아들의 머리 위로 서슬 퍼런 목소리가 떨어진다, 원망으로 삭아내린 뼈마디들 들쑥날쑥 횡렬, 종렬, 몸의 대열을 이탈하고 방황중이다

 

  700도 고열이 마지막 물기를 걷어가고 연병장을 달리던 군화소리 한 줌 재에 섞여 나온다

 

 <다층> 2010.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