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낙화를 따라가다 / 권운지

시인 최주식 2010. 7. 28. 22:52

낙화를 따라가다 / 권운지


 
  한 남자가 강물에 투신하였다고 아침
뉴스가 전한다. 뉴스를 전하는 화면 속으로 벚꽃 눈부신 봄이 강물처럼 출렁이며 지나간다. 그 남자의 지난했을 생애가 간단명료하게 자막으로 처리 되었다.낙화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작은 파문도 일으키지 않았다.벼랑까지 떠밀려와 꽃잎처럼 몸을 날린 그 남자를 생각하며 나는 지금 그 화면의 봄 속을 지나가는 것이다. 그 남자가 남겼을 절절한 유서속으로, 환하게 꽃 핀 길은 분명 무엇인가를 숨기고있다. 해독이 어려운 은유처럼 햇살속에는 비밀스런 향기가 섞여있다.어떤 향기는 잠결에 들은 고함소리 같다. 검은 껍질을 뚫고 나와 꽃들은 일제히 절벽에 매달려 있다.미풍에도 꽃의 중심은 뜨겁고 소란하다. 여린 꽃잎에서 절벽을 들어 올리는 힘을 본다.절벽 하나가 하르르 무너진다. 누군가 경적을 울렸다. 아찔한 어지러움에 나의 몸이 봄의 강물에 기울어졌다.


  <시와 반시> 2010,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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