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반과 반 / 백상웅

시인 최주식 2010. 7. 28. 22:52

반과 / 백상웅
 
거기를 지날 때마다 나는 반반을 고민한다.
간판에는 장의사라고 반듯하게 박혀있고
미닫이문에는 영어로 드럼렛슨이라 적힌,
거기는 낡았지만 웃긴 구석이 있다.
관을 짜는 사람과 드럼을 두드리는 사람이
한 건물에 다른 집기를 들여 놓고는
한 사람이 염을 할 때, 한 사람은 스틱을 닦을
거기, 나는 그들의 반반이 궁금하다.
다달이 나눠서 내야할 임대료문제와
죽음과 음악을 다툼없이 공유하는 법을
그들은 한 자리에서 해결하고 있을 테다.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을 처음 시켜 먹었을 때의
느낌과 사뭇 다른 거기, 시체가 굳는 동안
록큰 롤의 비트가 펄쩍 뛰는 이 무엄한 광경,
그들이야말로 경계를 아는 자들이 아닐까.
책상에 그어진 금과 비슷한 그 경계.
여기까지가 하나의 가설이다. 거기 주인이
시체를 닦으며 드럼을 치는 사람이거나
장의사가 망한 자리에 드럼을 치는 사람이
싼 값에 들어 온 것일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이 가설들도 진실과 거짓 사이의 이야기,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반과 반을 고민 한다.
내 생의 반쪽과 사과 한 알의 반쪽,
적도의 위아래 그리고 건물주와 세입자
내가 꼭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일,
손쉬운 양분법도 거기를 지날  때 시작되었다.
나는 아직까지 거기의 문이 열린 모습을
본적이 없다. 분명 이 동네에 거기는 존재하지만
드럼소리와 곡소리를 듣지 못했을 뿐이다.


    <시와 반시>2010.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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