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한영옥 / 아늑한 얼굴

시인 최주식 2010. 8. 14. 23:11

한영옥 『아늑한 얼굴』

너는 호미 한 자루 고요히 쥐고서
수화기 앞으로 나오는 듯하다
나의 어혈진 목소리 잘 풀려 흐르도록
골을 내어주는 그 아늑한 얼굴이
냇물처럼 흘러와 곁에서 다시 아늑하다

내 목소리가 흐름의 끝으로 잘 가서 고이면
너는 호미자루를 왼 손으로 옮기는 듯하다
네 목소리의 자작나무 빛깔을 짜기 위해서

너는 톡톡하게 조금씩 짜다가 간혹 멈춰서
숨소리만 어렴풋이 들려주기도 한다
호미 자루를 옮겨 쥐고 고랑을 살피는 것이다

네 천성의 맑은 말(言)빛은 참 멀리도 온다
한 이파리씩 짜서 조근조근 넘겨주는 네 목소리의
자작나무 빛깔로 나는 몇번인가 좋이
싯누런 굴욕을 덮어 재웠을 것이다

다시 네 바특한 목소리가 엷어진다
붉은 어혈을 더 풀어주어야겠다고, 너는
고랑을 더 깊고 넓게 파고 있는 듯하다
구부리고 있을 너의 등이 참 멀리도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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