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그댑니다 / 이정록
암에 걸린 쥐 앞에 열두 씨앗 놓아둡니다
성한 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씨알 쪽으로
병든 쥐가 시름시름 다가가 그러모읍니다
오물오물 독경하듯 앞발로 받듭니다
병든 어미 소를 방목합니다
건강한 소들은 혀도 디밀지 않는 독풀
젖통 출렁이며 허연 혀로 감아챕니다
젖은 눈망울로 뿌리째 뽑아먹습니다
그대 향한 내 병은 얼마나 깊은지요
그대 먼 눈빛에서 낟알을 거둡니다
그대 마음의 북쪽에 고삐를 매고
살얼음 잡힌 독풀을 새김질합니다
내가 아프니까 비로소 그댑니다
- 『정말』 (창비, 2010)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수 2009 / 정미정 (0) | 2010.08.23 |
---|---|
밀착密着 / 권현형 (0) | 2010.08.23 |
기하학적인 삶 / 김언 (0) | 2010.08.23 |
진경산수(眞景山水) / 성선경 (0) | 2010.08.23 |
섬 / 복효근 (0) | 2010.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