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 / 서화
가뭄으로 저수지 바닥이 드러났다
뽀얗게 말라버린 가장자리를 짚으며 내려오는 산그늘
악물었던 이빨을 풀고 처박힌 냉장고를 기웃댄다
일그러진 문짝을 가리겠다고 수초들 힘껏 팔 뻗는데
멀리서 주위를 맴도는 왜가리들
냉동실에 떠다니는 물고기들을 살핀다
너무 오래 갇혀 있었다는 듯 부글거리는 흙탕물 속에서
곰삭은 햇살의 토막 사이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저수지 층
낯익은 기록이다
물기 조금씩 빠져나갈 때마다
저수지 속 묵은 기록들이 환하게 드러난다
물도 제 나이를 적어두고 있었다
어디에도 기록할 수 없어서 제 살 위에 적어두었다
어쩌면 눈물을 찍어 썼을지도 모른다
빈 냉장고를 끌어안고 있는 건
저도 섬 하나쯤 품고 싶었던 간절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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