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이제 꽃피면 안되겠다 / 이성목

시인 최주식 2010. 9. 1. 22:28

이제 꽃피면 안되겠다 / 이성목

 

  소파가 꽃을 피우려는지 인조 가죽이 여러 갈래로 튼다. 갈라진 틈새로 노란 스펀지가 올라온다.

 

  의자는 몇 해 전에 이미 꽃을 피웠다. 굵고 탄력 있는 스프링 꽃대가 아직도 등받이 근처 등뼈처럼 구부정하다.

 

  아버지는 담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암은 어느 꽃의 구근이었는지 뿌리를 뽑아내자 한 순간 몸 속 가득 꽃을 피웠다. 나는 마른 꽃대처럼 남겨졌다.

 

  내가 혼자가 되었을 때, 수명을 다한 형광등에 푸른 멍을 보았다. 곰팡이 가득한 천장이 보였다. 떠나고 남는 것이 모두 꽃의 혼령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안되겠다 꽃이 피면 안되겠다.

 

  아버지 기일 오기 전에 소파를 고쳐야겠다. 형광등을 갈고, 바닥이며 천장도 손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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