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나이테 / 서화

시인 최주식 2010. 8. 23. 23:45

나이테 / 서화

 

가뭄으로 저수지 바닥이 드러났다
뽀얗게 말라버린 가장자리를 짚으며 내려오는 산그늘

악물었던 이빨을 풀고 처박힌 냉장고를 기웃댄다

일그러진 문짝을 가리겠다고 수초들 힘껏 팔 뻗는데

멀리서 주위를 맴도는 왜가리들

냉동실에 떠다니는 물고기들을 살핀다

너무 오래 갇혀 있었다는 듯 부글거리는 흙탕물 속에서

곰삭은 햇살의 토막 사이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저수지 층

낯익은 기록이다

물기 조금씩 빠져나갈 때마다

저수지 속 묵은 기록들이 환하게 드러난다

물도 제 나이를 적어두고 있었다

어디에도 기록할 수 없어서 제 살 위에 적어두었다

어쩌면 눈물을 찍어 썼을지도 모른다

빈 냉장고를 끌어안고 있는 건

저도 섬 하나쯤 품고 싶었던 간절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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