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자연사랑 생명사랑 시 공모전 금상 수상작
광릉숲의 일지 / 김설진
휴면에서 깨어난 광릉숲이 빗장을 열었다
숲의 안색은 화사하고
길을 비추는 참나무의 몸빛도 싱싱하다
갑자기 들이닥친 인간들의 소음에 귀를 막고
몸을 숨기는 숲의 주인들
참나무의 몸빛을 따라 숲 깊숙이 숨어든다
가지 끝에 달을 걸어 은신처로 길을 안내하던 참나무
인간의 손에 밑동이 잘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참나무에 세 들어 살던 도토리거미벌레, 열매에 낳은
알을 찾느라 우왕좌왕, 어미 잃은 애벌레도 길을 헤맨다
그 자리에 들어선 시멘트 가로등
밤낮 없이 숲에 빛을 쏘아댄다
쉴새없이 곤충을 유혹하는 가로등 불빛
매미가 잠을 설치며 이른 탈피를 시작하고
밤낮을 구별 못하는 나방들 수시로 날아와 불빛에 데어
떨어진다 가로등 밑에 밥상을 펼친 두꺼비 한 놈
낼름 식탐을 채우고
온갖 곤충들 강렬한 유혹에 산란기가 따로없다
딱정벌레들 단단한 갑옷을 굴리며 기웃 기웃
가로등을 타고 오르다 굴러 떨어진다
두 마리의 장수하늘소
참나무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선 가로등 불빛을 따라
인간의 영역에 들어선 후 사체로 발견된 수컷
그 후 어느 누구도 암컷을 보지 못했다
숲의 빗장을 다시 채울지 말지
밑동만 남은 참나무 그루터기에 곤충들이 모여 회의 중이다
'신춘문예 당선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 조선일보 신춘문예 / 시 당선작] 유빙(流氷) - 신철규 (0) | 2011.01.01 |
---|---|
2011 동아일보 시부문 당선작 - 오늘의 운세/권민경 (0) | 2011.01.01 |
제15회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작 중에서 (0) | 2010.08.09 |
제3회 <활천 문학상> 대상 (0) | 2010.03.06 |
[기획2] 신춘문예 우리 문학사에 어떻게 기여했나 (0) | 2010.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