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질량/이승복
우리는 그녀를 오후라고 불렀다.
파리 133km
오를레앙을 방금 지났을 게 분명했다. 아니면 못 미쳤거나,
그리 생각한 건 스치듯 지나간 표지판 때문이 아니다.
그 즈음에서 시작한 비 때문이었다.
아무튼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파리가 멀지 않다.
어두웠기에 짐작할 수 있는 것들 몇몇은 평면으로부터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다.
뭉클했다. 그대로 갇혀 있지 못한 것은 욕심 때문만이 아니라고도 했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오후 그녀가 지금쯤 어디선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것들에 대해 헤아려본다.
계곡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픈 사람은 눈이 맑다.
내내 그립다.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것들이 다 쌓이고 나면 이 봄은
정직한 섬이 되리란 걸 알고 있는 듯 했다.
가시기 전에 말씀해주시기 그랬어요.
닷새가 지나면 다시 3월이다.
입안에서 맴돌다 잦아들던 말들이 멀리 가지 못한 채 차창 위에 번진다.
지하에서 시작한 샘처럼 말이다.
작년인가 아니면 그 전일지도 모를 어느 날의 잔흔이 오늘보다 선명하다.
어둠에서 빛이 생경한 것도 실은 거울처럼 닮아 있는 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타협이 아니라 발견일 뿐인 이 지극히 익숙한 혼잣말조차 기억 속에서 또렷하다.
아마도 오후인 그녀는 지금 3월을 향해 가고 있겠다.
- <시평> 2010.가을호
* 이승복 : 1986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철지난 코트> 등이 있음.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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