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가마솥 원형경기장 외 1편 / 박종인

시인 최주식 2011. 1. 16. 15:23

가마솥 원형경기장 외 1편 / 박종인

 

폭염이 질주한다

도로가 후끈 달아오른다

한나절 중불이 열기를 부추긴다

뼈를 녹일 기세의 복달임

김을 쬔 여자의 얼굴에 개기름이 흐른다

더위를 빼문 개 한 마리

묶였던 울음을 가마솥에 쏟아낸다

주인을 핥던 주둥이로 뜨거움을 토해낸다

쇠창살을 긁어대던 발목이 녹아내리고

파르르 가마솥에 힘이 흘러넘친다

한 번도 어미가 되지 못한 젖꼭지

들러붙은 뱃가죽이 뒤엉킨다

싸움을 구경삼아 부추기는 식객들

그릇마다 식탐이 그득하다

개고기는 기름진 배받이가 제일이지

내장을 내준 복부가 최상품이라고 일러주고

허기진 배들이 잡견의 맛이 최고라고 응수한다

식칼이 다시 고기를 뒤집는다

걷어차인 똥개가 결승선을 넘는다

생전에 푸대접을 받던 잡견이 죽어서 제 값을 받는다

종주를 마친 생

아낙의 식칼이 설익은 죽음을 찔러본다

희멀건 복낭이 갈라진다

   

동굴 / 박종인 

  어둠은 일용할 양식, 오랫동안 어둠을 갉아먹은 내 입에선 이끼냄새가 나지 내 입의 크기에 맞게 어둠은 잘려지지 그러니까 네가 동굴에 들어서는 순간, 내 혓바닥에 통째로 올려지는 셈이지 밀봉된 동굴을 함부로 열지마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건 내가 입맛을 다셨기 때문이야 너를 한입에 삼킬 수도 있어

    

  군침을 흘릴 때마다 석순은 자라지 혓바닥에 검은 물이 들면 별미인 종유석을 늘려 먹곤 해 나를 곱씹고 곱씹어서 구멍은 점점 깊어지지 어둠에 갇혀 제 살을 파먹고 제 피를 마시는 고통을 넌 짐작이나 하니? 퀭한 눈은 거꾸로 서 있는 세상을 바라보지 빛에 닿으면 눈이 멀고 마는 나는 어둠이야 박쥐는 날 붙들고 잠들지 박쥐에겐 내가 하늘이며 땅이야

 

<시와사상> 2010.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