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길 위의 조문 / 전건호

시인 최주식 2011. 1. 16. 15:22

길 위의 조문 / 전건호

 

출근길 외곽순환도로를 달린다

영구차 행렬이 앞을 막아

졸지에 길 위의 조문객이 되고 말았다

꽉 막힌 도로

엉거주춤 망자의 뒤를 따르며 발을 굴러보지만

마음은 좀처럼 속도를 올리지 않는다

세상사 뭐 그리 바쁘다고

추월을 포기하고 뒤따르다보니

망자와 나 사이에

피치 못할 고리로 얽혀져 있다

한때 서로 몸 기대었으나

낯선 거리 스쳐 지나던 동행이라는 건가

엉거주춤 따라 붙는 나를

칠성판에 누워 지긋이 바라보다

이젠 되었다는 듯

한참 만에 길을 열어주는데

이쯤이면 서로 빚을 갚았다는 건가

도열한 가로수 손을 흔들자

굴뚝 위 흰 연기가

너울너울 만장을 흔들고

낮달이 요령을 잡는다

 

시집<변압기> 2010년 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