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두통의 역사 / 송재학

시인 최주식 2011. 1. 16. 15:27

두통의 역사 / 송재학

 

한 번도 머리를 비우지 못했다

얼굴 속 두개골을 씻을 수 없으니 머리가 맑긴 글렀다

눈이 창이기도 했지만 제 죄의식만으로도 바빴으니

미로형 창으로 다닐 바람의 여유는 없겠지

그 속을 텅 비워 보았으면

결가부좌로 채워 보았으면

사막을 헤매며 소실점에 닿아 보았으면

신기루의 경첩 소리 같이 들었던 낙타에게 물어 보았다

그 혹에 채웠던 것이 처음부터 물이었으니

머리를 헹굴 수 없으니

시렁에 머리만 뚝 떼어 얹기 힘드니

내 머릿속 지층의 빈혈을 따라가 본다

처음 발견된 구름이라는 엑스레이 진단을 받았다

두통의 해발에 걸린 구름들,

모두 숙주에 매달리는 구름이다

성층권에서 머리를 건져 바닥에 눕혀야 사라지는 고소 고통이다

발톱이 빠지는 고통이다

내 두개골의 항로를 고집하는 새 떼들이 아니라도

두통은 늘 구름 속의 일이었다

 

<시인시각> 2010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