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의 역사 / 송재학
한 번도 머리를 비우지 못했다
얼굴 속 두개골을 씻을 수 없으니 머리가 맑긴 글렀다
눈이 창이기도 했지만 제 죄의식만으로도 바빴으니
미로형 창으로 다닐 바람의 여유는 없겠지
그 속을 텅 비워 보았으면
결가부좌로 채워 보았으면
사막을 헤매며 소실점에 닿아 보았으면
신기루의 경첩 소리 같이 들었던 낙타에게 물어 보았다
그 혹에 채웠던 것이 처음부터 물이었으니
머리를 헹굴 수 없으니
시렁에 머리만 뚝 떼어 얹기 힘드니
내 머릿속 지층의 빈혈을 따라가 본다
처음 발견된 구름이라는 엑스레이 진단을 받았다
두통의 해발에 걸린 구름들,
모두 숙주에 매달리는 구름이다
성층권에서 머리를 건져 바닥에 눕혀야 사라지는 고소 고통이다
발톱이 빠지는 고통이다
내 두개골의 항로를 고집하는 새 떼들이 아니라도
두통은 늘 구름 속의 일이었다
<시인시각> 201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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