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지붕이 있는 간이역 / 박명보
소소해서 눈에 드는 것들이 있다
그 작은 간이역처럼
낡은 것들만이 지니는 온화함을 아는 듯
그곳엔 속도에서 비켜난 사람들이 머물다 가곤 한다
간혹 늦은 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리거나
길 바깥을 기웃거린 어린 꽃잎들이
귀환을 거부하는 여린 병사의 몸짓으로 날아들기도 했는데
그 역사의 지붕이 왜 붉은지……
ㅡ 붉은 우체통은 너무 상투적이야
당신은 말하겠지만
거창하게 납득시킬만한 이유가 아니라도
어느 레일위에도 몸 싣지 못하고,
어느 곳에도 도착하지 못한
거주불명의 밤들이 있는 것이다
진부해서 그리운 아날로그
그 밋밋한 이마를 만지고 있을 때
불안을 거처삼은 내 안의 누군가
이 몸도 간이역이라고,
오래된 아픔을 불러내듯
우체통, 그 캄캄한 입속을 자꾸 들여다보는 것인데
<시와사람> 2010.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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