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요리대백과 / 권혁웅
-밥상
1
너는 누구를 닮아 그 모양이냐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첫째는 발끈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이놈의 집구석을 그냥, 확,
부드럽게 삶아서 찬물에 헹구어 건진 다음 간장, 설탕, 참기름을 넣어서 조물조물 비비고 싶습니다만
그건 당면 얘기고요 첫째는 제가 소금물에 데친 시금치라는 걸 압니다 둘째는 아직 뻣뻣해서 당근, 셋째는 너무 어려서 계란지단이죠
밥상은 얌전하고 일가는 단란합니다 깨소금으로 마무리되었거든요 그런데 잡채는 금방 쉬는 게 참 문제는 문제예요
2
첫째도 그렇지만 엄마는 둘째가 더 걱정입니다 아빠를 닮은 게 분명하거든요 이 집 가장은 혼자서만 빛이 납니다
60촉은 되겠네요 유전 때문에 아빠는 오이처럼 민숭민숭하다가 미역처럼 풀이 죽었다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둘째와 아빠의 머리를 교대로 보면서 한여름 시원한 냉국을 들이킵니다 그놈, 아빠를 꼭 닮았어, 그러면서요
둘째가 비뚤어지겠다고 마음먹는 것도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거기에도 깨소금은 들어갑니다 냉국도 금방인 게 문제예요
3
아이더러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고 제발 묻지 마세요
그건 밥상을 엎은 다음의 질문입니다
시집<소문들> 2010년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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