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 최승호
소외의 군락에서도
또 소외가 일어난다
밤이다
화분이 보이지 않는다
놓아둘 곳이 마땅치 않았던 화분
키가 흑두루미만 한
그러나 너절하게 입을 늘어뜨린 자태가 보기 싫었던
나에게는 사랑을 받지 못했던 화분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연다
어류처럼 축축한 밤의 공기
썩은 아가미를 벌려라, 비가 온다
죽은 지느러미를 저어라, 비가 온다
현관문을 열고 계단들을 올라간다
묵직하게 닫힌 철문을 열어제친다
텅 빈 옥상
어두운 하늘 밑 쥐회색 지붕들
비가 온다 텅 빈 건조대
그 옆에서 화분이 우두커니 비 맞고 있다
담뱃불을 자꾸 비가 끈다
도대체 이 화분 안의 주인공은
어디에서 오신 누구이신가?
시집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 열림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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