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풍경의 깊이 ... 김사인

시인 최주식 2011. 3. 25. 00:04

풍경의 깊이 ... 김사인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 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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