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이생진
-화첩설화畵帖說話
서울 어디선가 택시를 탔다
택시 앞자리에 시집만 스무 권 꽂혀 있다
그 속에 내 시집도 들어 있다 그래서
‘시를 좋아하시네요?’ 했더니
“네, 읽던 시집을 꽂아놨어요”하고 쳐다본다
‘내 시집도 있네’
했더니 “누구신데” 한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아, 그러세요. 나는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을 좋아하는데”
그러면서 그 시를 암송한다
“저는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한다를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가로수가 취한다고 하지요”
오늘은 모도에서 양식장을 하는 진씨 부부가
‘그리운 바다’를 간판으로 내걸고 전복 장사를 하는데
일본으로 수출하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그리고 여기 여수 돌산섬 ‘일출민박’ 주인이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을 암송하며 내게 소주를 권한다
술과 시
술은 시의 어머니요 아내요
연인이다
술 때문에 시를 그리는 화첩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해삼이 다 떨어졌는데도 술을 가져오라는 것은
아직 내 화첩에 안주가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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