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 한 무더기/이용철
말하지 못하는 입이 있다
주는 대로 받기만
은빛 입에 봄 잎, 초록 잎, 단풍 잎 그리고 겨울 산
쏟지 않고는 못 배긴다
노동자는 그것을 작품이라고
혹은 작가의 인격이라고 말해
한 동의 물을 마셔도 목이 마른 저 입
노동자의 손은 바쁘다
마치 화가라도 된 듯,
황토색 수채물감 번지 듯
입은 일그러진 아그리파, 뭉개고 지우며
아, 끝없는 칠 잔치
제발 곧게 쭉 뻗어 가야할 곳 가는 인격의 입장을 바래
누구나 실수는 있지
부주의가 만든 당신 작품
차마 입은 말하지 않아도 저 노동자의 일 년치 월급이 새어나갈 수도
붉은 팬티 사각에 벗어 놓고 간 당신
보라!
촤악 쏴 아아악
몸을 뒤틀며 흐르는 인격 한 무더기
물을 마셔도 목이 마르다는 저 입속으로
노동자는 뚝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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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곧은 시인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용철 시인 역시 시적 형상화는 자기 자신이다. 늘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고 싸우고 상처받고 화해한다. 그렇기에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바람처럼 떠나며, 반란이나 혁명과도 같은 새로운 시의 길을 열어가는 시적 파장은 멈추지 않는다. <황토색 수채물감 번지 듯/입은 일그러진 아그리파, 뭉개고 지우며/아, 끝없는 칠 잔치>를 읽으면 등이 휘어지도록 짊어진 세속의 짐과 시정신이 살아 움직인다. 화가(畵家)인 이용철 시인은 우리가 미처 가보지 못한 미지의 신대륙을 발견하는 것과도 같은 시심으로 형이상학적 메세지를 전하는 시인이다.
<인격 한 무더기>는 인간 인식에 대해 근원적이고 철학적 접근을 하고 있는데 말하지 못하는 입을 통해 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핵심 이미지를 밖으로 밀어내는 힘에 무게가 느껴진다. <몸을 뒤틀며 흐르는 인격 한 무더기/물을 마셔도 목이 마르다는 저 입속으로/노동자는 뚝뚝>에서 보듯 물을 마셔도 목이 마르다는 것은 현상학적 입장에서 보면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용철 시인이 어떤 시심으로 독자들에게 쾌감을 줄 것인지 응시하고자 한다. (최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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