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조

2012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암자에 홀로 앉아/박 상 주

시인 최주식 2012. 3. 12. 22:05

 

불교신문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암자에 홀로 앉아/박 상 주 

 

날 좀 때려주오

천년고찰 범종 치듯

안으로

다져놓은

전탑(塼塔)언어 청태(靑苔)눈물

빈 골짜

다 쏟아 붓고

나비 되어 가련다

  

■ 시조 당선소감 

못다 한 말, 심장 속에 한 장 벽돌로 구워냈다아침에 비둘기 떼가 한바탕 원무(圓舞)를 추며 하늘을 쓸더니, 오후에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암자에 홀로 앉아’라는 작품이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기쁘나 슬프나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던 앞산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떡인다. 이미 처녀시집까지 펴낸 아내가 큰 눈을 반짝이며 축하의 손을 내민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찌 할 소리 다하고 흘릴 눈물 세상에 다 보일 수 있겠는가. 사람은 저마다 밤이 되면 못다한 말 덩이 덩이를 한숨으로 이겨서 뜨거운 심장 불 속에 넣어 한 장의 벽돌로 구워낸다.

 

그리고 그 벽돌을 차곡차곡 마음 한 기슭에 쌓아올려 전탑(塼塔)을 세우고 그 전탑 위로 혼자 흘린 눈물은 이끼로 피어나고 그 위로 날아든 풍경(風磬)소리는 푸름을 더해간다. 하루가 저물어 갈 때 들려오는 산사(山寺)의 범종(梵鐘)소리는 숙연한 기분을 자아낸다.

 

둥! 종이 울리고 한 동안 그 파동은 지속되다가 웅! 웅! 맥놀이를 거듭하다 서서히 종소리는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종소리가 울려온다. 마치 중생들이 생로병사(生老病死) 속에 억겁 생(億劫 生)을 거듭하며 쌓아온 모든 번뇌덩이를 모아 빈 골짝으로 쏟아버리듯. 곡마단 천막 안에서 무대가 보이지 않아 발뒤꿈치를 치켜들던 키 작은 소년같이, 아직 낮은 등고선에 머물고 있는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법화경> ‘화성유품’의 ‘변화성(變化城)’으로 잠시 자리를 마련해 주신 그 배려와 믿음이 헛되지 않도록 정상(頂上)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백양산 선암사 저녁종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누가 날 때려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머리를 쳐본다. 어릴 적 심어둔 별 하나가 동지 밤을 치른 겨울 하늘에 돋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