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꽃
밤이면 그 밤마다 잠은 자야 하겠고
낮이면 세때 밥은 먹어야 하겠고
그리고 또한 때로는 詩도 읊고 싶고나
지난봄 진달래와 올 봄에 피는 진달래가
지난 여름 꾀꼬리와 올 여름에 우는 꾀꼬리가
그 얼마 다를까마는 새롭다고 않는가
태양이 그대로라면 지구는 또 어떨 건가
수소탄 원자탄은 아무리 만든다더라도
냉이꽃 한 잎에겐들 그 목숨을 뉘 넣을까
-이병기(1891~1968)
냉이꽃은 밟혀도 피고 지는 민초(民草) 같은 꽃이다. 메말랐던 우리네 삶을 봄마다 환히 살리고 먹이던 꽃이요 나물이다. 그래서 원자탄으로 대변되는 과학문명의 폭력성을 극대화하기에도 좋은 제재였으리라. 2차 세계대전 말의 원자탄 투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의 기록이다. 가람 이병기는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조선의 얼을 찾고 세운 학자이자 시인이지만, 가공할 파괴 앞에선 생명의 평등한 존엄성을 일깨운다. 생명의 옹호, 그것이 난초를 지극히 애완한 시인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냉이꽃을 새삼 노래한 까닭이다. 마침 핵확산 금지를 위한 회의를 서울에서 열고 있다. 핵(核) 없는 세상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와도 이마를 맞대야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시인의 전언(傳言)이 더욱 오래 맴돈다. 냉이꽃 한 잎에겐들 그 목숨을 뉘 넣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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