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評·컬럼(column)

5월호 권두언,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시인이요, 낭송가다./최주식

시인 최주식 2012. 5. 6. 21:51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시인이요, 낭송가다.

 

한국서정작가협회 회장 최주식

 

시 낭송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차를 마시던 사람이 갑자기 물어왔다. 저는 등단을 해서 시인이란 이름을 갖게 됐지만 시 쓰는 즐거움 못지않게 시 읽는 즐거움도 크다고 생각해요. 시를 읽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생기가 넘쳐요. 어떤 사람이 시인이고 낭송가인가요? 시인이나 낭송가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푸른 하늘과 꽃과 바다를 좋아할 수 있듯이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모두가 시인이요, 낭송가라 할 수 있지요. 대답을 마치자 그 사람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젊은 시절, 전남 구례 화엄사 계곡을 출발하여 바람소리 새소리 따라 성삼재를 거쳐 노고단까지 산행을 한 적이 있어요. 노고단 오르는 능선에는 노린재나무, 산죽, 고광나무, 쇠물푸레나무, 병꽃나무, 조팝나무 등이 많은데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땅꼬마처럼 키 작은 모습으로 연분홍 꽃망울 터트린 철쭉을 보았어요. 그 날따라 어찌나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던지, 이 세상 어디에 살든 시시한 삶은 없다는 깨달음 같은 걸 느꼈어요. 키 큰 나무 사이에서 밝은 자태를 보여주는 의연함이 당당했어요. 산행이 끝난 다음에도 자꾸만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았어요. 

 

철쭉을 짝사랑한 거네요? 얘기를 듣던 사람이 제법 심각하게 말한다. 맞아요, 짝사랑에 빠진거지요. 철쭉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향가 헌화가의 소재이기도 하잖아요. 나무 사이 초록 풀빛과 어울려 길마중인 듯 아니면 존재 증명인 듯 꽃 피운 철쭉 향기가 내 영혼을 끌어당긴거지요. 사랑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혼자 애태우면서도 마음속에 그리면 저절로 미소가 나오는 짝사랑이지요. 짝사랑에 빠지니까 아프던가요? 아프지는 않고 세상이 온통 즐겁고 기쁘게 보였어요.

 

좋았겠네요? 좋았지요. 정말 좋았지요. 몇 일 동안 철쭉꽃을 보는 상상을 하며 그 때 처음으로 시 아닌 시를 썼어요. 그리고, 꽃처럼 기쁨을 주는 시, 지리산처럼 넉넉한 시, 바람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시를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비록 이런저런 이유로 바라던 바에 미치지는 못했지만요.

 

좋아하는 애송시가 있나요? 본래 시는 노래에서 나왔다고 해요. 시를 소리내어 읽으면 운율따라 시가 지닌 속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애송시는 행복(유치환), 꽃(김춘수), 진달래꽃(김소월), 향수(정지용), 님의 침묵(한용운),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사슴(노천명), 서시(윤동주), 귀천(천상병), 목마와 숙녀(박인환) 외에 여러 편이 있는데 모두가 서정성이 풍부한 시들이며, 자작시도 몇 편 암송하고 있어요.

 

이 시간이면 꽃들은 무얼하고 있을까요? 아마도 잠들어 있겠지요. 아름답고 향기롭게 우리 가슴 속 정원에 핀 꽃들은 잠들어 있겠지요. 바깥 세상에 핀 꽃보다 우리 가슴 속에 핀 꽃들이 훨씬 더 아름다워요. 나는 그 사람으로 인해 짧은 시간이지만 오랫만에 지난 날의 감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제서야 시인의 양식은 독락(獨樂)이 아닌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사랑과 행복임을 감잡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