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評·컬럼(column)

불교가 아니라 몇몇 스님이 문제다./최주식

시인 최주식 2012. 5. 15. 22:23

불교가 아니라 몇몇 스님이 문제다./최주식

 

종교에 대한 일반인의 평을 들을 때가 있다. 들을 때마다 천편일률적이어서 식상하기도 하지만 더불어 고개를 끄덕일 일도 가끔 있다. 종교의 부정적인 부분은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긍정적인 부분은 칭찬을 아끼지 않아 비판과 칭찬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런 면에서 우리 국민의 의식이 매우 깨어 있음을 느낀다.

 

요즘 스님의 밤샘 도박으로 인하여 불교의 정체성이 의심스럽다는 말까지 나온다. 대부분의 스님은 부처님의 자비행을 실천하고, 공덕을 쌓으며 청정 수행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스님의 스님답지 못한 행동으로 인하여 불교에 대한 사회적 지탄과 불명예를 안겨주었다. 도박과 술이 수행이고, 그곳에 부처님이 계실거란 착각을 하셨을까? 몇몇이긴 하지만 스님도 일반인보다 더 못한 사람일 수 있다는 현실에서 과연 앞으로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의구심 마저 든다. 

 

스님의 밤샘 도박이라는 부적절한 처신은 개인적, 불교적 문제에 그치지 않고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불교계 내부적으로는 한결같이 닦음에 게으르지 않고 수행 정진하는 대다수의 스님들에게 치명적인 충격을 주었다. 사회적으로는 불교에 대한 실망이다. 이런 분위기가 부정적으로 확산되면 종교의 기능인 대사회적 역할의 범위가 점점 좁아지고 말것이다. 어둠이 깊으면 빛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 스님들이 새롭게 거듭나기를 불자들은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상생활 대부분을 법의 테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불교에도 지켜야 할 계율이 있다. 부처님께서도 열반에 든 후에 누구를 의지해 스승으로 삼아야 하느냐는 제자의 질문에 <계(戒)로써 스승을 삼으라>고 하셨다. 계는 스님이나 불자들이 어떻게 살겠다는 맹세요, 다짐이다. 온갖 갈등과 부조화 속에서도 지켜야 할 삶의 질서요 청정한 생활 규범이다. 청정한 생활 규범을 지키며 사는 것과 무질서하게 사는 것과는 삶의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범망경(梵網經) 보살계 서문에서도 계(戒)를 지니면 어두운 곳에서 등불을 만난 것과 같다고 했다.

 

이제 국민들에게 자정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스님들 몫이다. 하루빨리 부처님 법에 의해 참회하고 정화되어야 한다. 절 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충돌,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아집에서 벗어나 승가 본연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사회와 대중들에게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할 망정 추악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마땅히 승복은 벗어야 할 것이며 불자들은 박수로서 환영할 것이다.

 

나는 오늘도 활짝 피어 향기를 내뿜는 불교의 희망을 본다. 어려운 수행 환경 속에서도 정진하며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하는 얼굴없고 말없는 스님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스님들은 불교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무명이지만 각박한 이 사회를 맑고 아름답게 가꾸어 가고 있다.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되는 몇몇 스님으로 인해 많은 선행을 실천하는 대다수의 스님에게 누가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바람이 불더니 구름이 끼고 다시 해가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