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 잎/신대철
낮은 山도 깊어진다.
비안개에 젖어 무수히 피어나는 속잎,
연하디연한 저 빛깔 사이에 섞이려면
인간의 말의 인간을 버리고
지난겨울 인간의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했을까?
핏줄에 붙은 살이 더러워 보인다, 잎과 잎 사이
벌거벗고 덜렁거릴 것 덜렁거리며 서 있을수록……
잎, 잎, 무성하거라 무성하거라 무성하거라
한여름 山 속에 미리 들어와 마음을 놓는다.
―신대철(1945~ )
나무의 연한 속잎들의 빛깔은 그대로 우리가 잃은 마음의 빛깔이다. 말의 때에 찌든 마음, 말의 노예가 된 마음, 아무런 울림이 없는 마음. 그곳에 메아리가 깃들도록, 그곳에 싹이 돋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산으로 향하곤 한다. 물소리 새소리가 찢긴 마음을 봉합한다. 모두 벗고 '덜렁거릴 것 덜렁거리며' 서 있노라면 받아들이지 않았어야 했을 인간사의 유혹들도 나타난다. 치유와 반성의 자리가 바로 '세속' 아닌 '산속'인 것이다. 마음 끝에 연두의 싹이 돋아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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