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주사/엄기원
약 냄새가
코를 톡 쏜다.
낯선 아저씨가
주사기를 들고,
낯선 누나가
약솜을 들고 다가서면,
주사침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
서로 빠져
뒤에 가 선다.
―엄기원(1937~ )
예방주사 맞던 날, 마음 약한 여자아이들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팔소매를 걷어붙인 남자아이들은 매 맞을 때보다 더 두려움에 떨었다. 그래서 마치 쓰나미에 쫓기는 사람들처럼 서로 빠져 뒤에 가 서려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용케 뒤로 가서 선들 오히려 기다리는 두려움이 더 무서웠다. 세상에 나가면 그 주사침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친구들아, 그래도 그때 예방주사 맞던 때가 좋았지, 지금은 어디 있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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