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에이 피/임채성
지나치듯 슬몃 본다,
백화점 의류매장
명조체로 박음질한 GAP상표 하얀 옷을
누구는 ‘갑’이라 읽고
누군 또 ‘갭’이라 읽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갑이 있고 갭이 있다
아무런 잘못 없어도 고개 숙일 원죄 위에
쉽사리 좁힐 수 없는 틈새까지 덤으로 입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갑의 앞에 서야 한다
야윈 목 죄어 오는 넥타이를 풀어버리고
오늘은
지, 에이, 피를
나도 한번 입고 싶다
-임채성(1967~ )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력난마저 불쾌지수를 높인다. 적정 온도를 사수하느라 공무원도 가벼운 차림으로 더위와 대전(大戰) 중이다. 이참에 '쿨 비즈'나 장만해볼까, 쇼핑 나서는 사람도 많을 법하다. 그중에서 상표에 홀리지 않는 이가 얼마나 될까. 'GAP' 따위에 홀리면 한번 걸쳐 보다 질끈 감고 지르기도 하렷다. 그렇게 우리는 상표로 자기 가치를 높이고 즐기는 풍조를 따라서 살고 있다. 그런데 그게 진짜 '갑'이 되기도 하니, '옷이 날개'라는 설(說)이 갈수록 등등하다. 그보다 센 '갑'은 여전히 우리를 옥죄지만, 숱한 '갭'을 넘으려면 이 더위부터 힘껏 넘어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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