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나무와 구름/박재삼

시인 최주식 2012. 7. 11. 22:27

 

나무와 구름/박재삼

 

나무들은 모두 숨이 차다
그러나 하늘의 구름들은
하나같이 평상(平床)에 누은 듯
태평(太平)이 몸짓으로
옷자락만 나부끼고 있을 뿐이다.
나무들은 구름이 그리워
연방 손을 흔들고 있지만
구름들은 어디까지나 점잖은 외면이다.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너를 향해
지금 한창 몰아쉬는 숨인데
아직도 외면인가.

땅을 적시는 소낙비
하늘을 가르는 번개가
내 앞을,
답답한 내 앞을,
말끔히 말끔히 쓸어주리라.

 

―박재삼(1933~1997)

가뭄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연애가 그렇듯 목마른 가뭄이다. 갈증에 시달린다. 기후만이 그러랴. 손 앞에 잡힐 듯 안타깝게 달아나는 많은 행운은 나만 비켜가는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은 순리(順理)가 있을 뿐이다. 모든 성공 이데올로기는 약한 자들을 슬프게 한다.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말처럼 오만하고 무책임한 말도 없다. 모두가 스스로의 존귀한 가치를 실현해 갈 뿐이다. 나는 나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서 간다.

순리라 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기다림은 얼마나 아픈가. 비를 기다린다. 하늘을 가르는 천둥 번개를 기다린다. 한번 비가 지나가면 다른 세상이 된다. 그래서 사랑도 개인에게는 혁명이다. 사랑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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