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책을 읽으며 ―못에 관한 명상 35/김종철

시인 최주식 2012. 7. 11. 22:24

 

책을 읽으며 ―못에 관한 명상 35/김종철

 

허리 굽은 세상 하나 건너와
잠 못 이룰 때가 많아졌다
그런 밤에 누군가 돋보기 쓰고
책장을 넘긴다
책장 문턱에 이마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지나간다

플랫폼에 도착했다. 플·랫·폼·에·플·랫·플…………

눈까풀이 활자를 뛰어넘지 못해
잠시 눈 붙이면
나 아닌 것들은 모두 안경 벗고
뒷걸음치고 있었다
오늘 무엇을 보았는가?
오가는 길밖에 보질 못했소
그렇다면 눈을 빼버려라!
깜짝 놀라 눈 뜨고 책 읽으면
주인공은 벌써 기차에서 내려
한때 우리가 살았던 도시의 폐허로
걸·어·가·고·있·었·다……………

 

―김종철(1947~ )

책 속으로 기차가 지나간다. 책 속으로 길이 한 갈래 꼬부라져 들어간다. 책 속으로 바람이 불고 책 속에서 나무 한 그루 자란다. 쉽게 잠들 수 없는 나날이 온다. 그러면 우리는 책 속으로 가 본다. 우리는 늙도록 책을 끼고 살 수밖에 없다. 책에 무엇이 있던가. 글자와 단어와 문장과 단락들…. 그렇게 기차의 레일처럼 이어진 말들이 있다. 그러나 진정 책 속 문장들을 넘어서야 비로소 의미에 닿는다. 말이라고 하는 물을 다 퍼내야 잡히는 퍼덕이는 물고기. 그 환희! 의미를 관통하라는, 노경(老境)의 더듬거리는 독서 풍경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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