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일
포플러/어효선
키장다리 포플러를
바람이
자꾸만 흔들었습니다.
포플러는
커다란 싸리비가 되어
하늘을 쓱쓱 쓸었습니다.
구름은 저만치 밀려가고
해님이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어효선(1925~2004)
포플러가 서 있는 여름 풍경이 포플러 잎사귀처럼 새뜻하다. 이 동시를 읽으면 마치 한 줄기 소낙비처럼 마음이 청량해진다. 도시의 여름은 싸구려 기름으로 여러 번 튀긴 튀김처럼 땀과 기름에 전 냄새가 난다. 구름은 너덜너덜한 솜 뭉치나 먼지 뭉치처럼 뭉쳐서 몰려다닌다. 이런 숨 막히는 도시에 살다 보면 문득 포플러가 서 있는 동심의 시골 풍경이 그리워진다.
어렸을 때 포플러가 서 있는 강둑에 친구들과 함께 자주 놀러 갔다. 가난해서 비록 물로만 채운 물배였지만 그 물배를 북처럼 두드리며 우리는 씩씩하게 포플러 아래를 달렸다. 그러면 포플러는 커다란 싸리비가 되어 하늘을 쓱쓱 쓸어주고, 해님은 우리를 웃으며 내려다보았다. 때로 포플러는 커다란 풍차가 되어 시원한 바람을 보내주기도 했다. 강물에 뛰어들어 멱을 감고 나면 어느새 포플러는 기린처럼 길게 목을 빼고 저녁놀에 빨갛게 젖어 있었다. 포플러가 서 있는 강둑을 걸어 저녁놀을 바라보며 집으로 가던 동심의 여름이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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