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메아리/마종기

시인 최주식 2012. 7. 11. 22:30

메아리/마종기

작은 호수가 노래하는 거
너 들어봤니.
피곤한 마음은 그냥 더 잠자게 하고
새벽 숲의 잡풀처럼 귀 기울이면
진한 안개 속에 몸을 숨긴 채
물이 노래하는 거 들어봤니?
긴 피리 소리 같기도 하고
첼로 소리인지 아코디언인지,
멀리서 오는 밝고 얇은 소리에
새벽 안개가 천천히 일어나
잠 깨라고 수면에서 흔들거린다.
아, 안개가 일어나 춤을 춘다.
사람 같은 형상으로 춤을 추면서
안개가 안개를 걷으며 웃는다.
그래서 온 아침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우리를 껴안는
눈부신 물의 메아리.

―마종기(1939~  )

철썩이는 욕망을 접으면 호수의 노래를 들을 수 있으리라. 그것은 소리로 올까, 형상으로 올까. 안개는 물의 메아리다. 물은 밤새 몸을 바꾸어 노래처럼 이동한다. 유연한 리듬과 절제된 음정으로 천천히 지혜를 구하는 이의 귀를 적시리라. 일상의 피곤은 잠시 놓아두고(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서 풀려나는 몽상을 따라간다. 춤이 되었다가 웃음이 되었다가 품이 되는 물의 변주(變奏)는 그대로 어머니나 누님의 마음 같다. 바다의 노래는 청년의 노래겠지만, 새벽 호수의 노래는 노경(老境)의 노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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