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덤/하청호

시인 최주식 2012. 7. 11. 22:33

덤/하청호

엄마 심부름으로 시장에 갔다

기특하다고
콩나물 한 줌 덤으로 받고
감자도 한 개 덤으로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소낙비가 내렸다

잠시 후, 하늘은
내게 착하다며
푸른 가슴을 열고
오색 무지개를 덤으로 보여 주었다

―하청호(1943~  )

/유재일
으레 아이들 몫이었던 심부름은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의 하나였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엄마가 부르면 대개 심부름을 시키려는 것이었다. 심부름이 하기 싫어 부모님 몰래 나가 놀고 저녁에 들어갔다가 된통 혼이 나서 쫓겨나기도 했다. 대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서럽게 바라보던 저녁 별의 추억이 지금도 아련하다.

그러나 심부름에는 때로 덤으로 얻는 보람과 기쁨도 있었다. 시장 가게에 물건 심부름을 가면 기특하다고 덤으로 콩나물이나 감자를 더 얹어주었다. 가끔 사탕도 손에 쥐여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어른들이 "오, 고 녀석 참 기특하구나"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칭찬도 덤으로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땐 이 동시처럼 소낙비 끝에 무지개를 보는 뜻밖의 즐거움을 덤으로 누리기도 하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심부름과 같을 터이다. 하기 싫은 일, 내키지 않는 일도 하다 보면 덤으로 얻어지는 게 있다. 그것이 물질이든, 마음의 기쁨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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