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주목나무에 주목하다 - 박정원

시인 최주식 2012. 7. 19. 21:53

주목나무에 주목하다 - 박정원

옹이진 말들을 채 하지 못해 핀 꽃일까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 10촉짜리 전구처럼
주목나무, 빨간 열매를 수없이 매달고 있다
저 성전으로 잠입하여 첫 전구를 켜고 싶다
그리고는 꽃도 나비도 없이 맺힌 열매에 대하여
그 많은 색 중에서 유독 빨강을 택한 것에 대하여
한쪽 귀퉁이를 귀걸이처럼 뻥, 뚫어놓은 것에 대하여
묻고 싶다, 한번 선택한 것을 물릴 수는 없었는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는 없었는지
꼭 그 자리 그 곳에서 평생을 보냈어야만 했는지
왜 가시도 아닌 이파리를 가시처럼 거느렸는지
마지막 전구를 켤 때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방에서 마침내 눈물을 흘릴지라도
천천히 걸어 들어가
바람이 불어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늠름함에 대하여
지치고 힘들어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 깊은 속에 대하여
묻고 싶다, 어떻게 하면 그리 환한 불을 켤 수 있었는지
부르지도 않았는데 내게 스스럼없이 다가올 수 있었는지
그의 속 뜰에 묻어놓았던 말들을 캐내고 싶다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에 물을 준다 /이선자  (0) 2012.08.09
물의 노래 - 김충규  (0) 2012.07.19
돛-유배시편2 / 정 숙  (0) 2012.04.27
감자박스를 보낸다 / 이향숙  (0) 2012.04.23
멍키의 힘 / 이해원  (0) 2012.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