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
예컨대 5집 앨범의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타이틀은 어떤가. 평범함을 뜻하는 ‘보통’이 최상급을 뜻하는 ‘가장’의 꾸밈을 받을 때 발생하는 시적 긴장감을 보라.
그렇다면 가장 보통의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인생이 제 멋대로 되지 않는 이들이다. ‘참 더럽게 이상한 세상이야/멈추라고 할 때까지 걸어야 해’(언니네이발관, ‘나는’)라고 푸념만 할 뿐, 인생의 성취는 멀고 몰락은 가까운 그런 사람들이다.
세상의 절대 다수는 매일 몰락하며 살아가지만, ‘참 더럽게 이상한 세상’은 몰락하는 이들에겐 관심이 없다. 세상은 늘 번영하고 성취하는 이들의 편이었다. 그래서 이 밴드는 소중하다. 몰락하는 보통의 존재들에게 말이라도 걸어주니까.
몰락에 관해서라면, 기억해둘 시인이 있다.
이름 허연.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했다. 허연의 시는 번영을 조롱하고, 몰락을 찬양한다. 그의 최근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문학과지성사) 표지에는 이런 글이 있다. ‘살아있는 누구도 날 감동시킬 수 없다. 사라진 자들만이 추앙된다.’
표지가 예고하듯, 이 시집은 몰락과 소멸의 노래들로 가득하다. 말하자면 ‘허연 공화국’은 몰락한 이가 주인이 되는 몰락주의자들의 공화국이다.
‘무너져버린 콘크리트 더미 사이에서 고양이들이 짝짓기를 한다(…)//몰락은 사족 없이도 눈부시다.(…) 그리고 그 몰락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짝짓기란.//(…)’(몰락의 아름다움)
몰락은 아름답다. 몰락이란 가장 보통의 존재가 살아가는 삶의 법칙이니까. 하지만 몰락의 현장에 작은 희망이라도 없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무덤 같은 생을 걸어갈까.
허연의 시가 아름다운 까닭은 몰락의 현장에서조차 소박한 희망을 길어내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더미에서 집행되는 짝짓기는 몰락을 뚫고 솟아나는 생명의 기운이다.
문학이란 몰락하는 자들의 표정이다. 문학은 본디 실패하거나 좌절한 이들을 통해 세계를 재현해왔다. 허연의 시에서 그 몰락의 표정을 읽어내는 일은 섬뜩하되 희망적이다. 그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선언했지만, ‘허연 공화국’은 본래 몰락한 자들의 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