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반추 50년, 시인 장윤우가 걸어 온 길
오양호 칼럼
-다시 만나고 싶은 시인 (월간 모던포엠 게재)
뚜벅이 반추 50년, 시인 장윤우가 걸어 온 길
오양호(정지용기념사업회 회장, 문협평론분과 회장)
시인 장 윤우의 시력은 반세기다. 1963년 1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인이 되었으니 이제 그 시력이 48년이다. 이 시인이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쓴 것까지 합한다면 사실 이 시인의 시 쓰기는 무려 반세기가 넘는다. 그런데 아직도 건재한 시 쓰기를 지속하고 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해야 제대로 말하는 것이 될까.
바로 뚜벅이 반추다.
오로지 주인을 섬기고자 왔다.
미련하고 느린 뚜벅이로 묵묵히 살다가
먹은 만큼 더 열심히 일하고
또다시 일터로 나간다.
천형(天刑)의 멍에로 등에 지고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누(陋)를 끼칠 일은 없을까?
씹고 곰곰이 되씹으며
마지막이 살 한조각, 뼈 한줌까지
주인에게 모두 바치고 떠나련다.
나, 늙은 숫소의 숙명(宿命)이다
<뚜벅이 반추>전문
문학 작품을 작가와 분리하는 것이 옳다는 문학이론도 있고, 작품은 곧 작가 자신이다는 논리도 있다. 둘 다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 여기서 그 근거를 다시 따질 필요는 없다. 장윤우는 전자의 논리와 호응된다. 곧 시 쓰기에 반세기를 바쳐온 자신을 늙은 수소(황소)의 숙명에 비유한 위의 시가 자신의 한 평생을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시인 자신의 말에서 답을 찾을 경우 시인의 의도나 역사적 배경이 정답이 되고 평론가의 임무는 소거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이른바 의도의 오류(Intentional fallacy)다.
이 시를 저자의 의도를 단절시킨 실제의 의미에서 읽으면, 오로지 주인을 위한 존재로 일만해온 늙은 황소에 대한 찬미다. 그런데 이 황소를 장윤우 시인으로 읽으면 저자의 의도나 작품의 역사적 배경이 비평가의 참고사항이 아니라 저자가 작품에 사용한 단어에서 이해할 수 있는 모든 뜻을 다 이해하고, 그 너머 어떤 특이한 연상에까지 나아간 것이 된다. 이 시 하나만 따질 때 시의 어느 부분에서도 ‘황소=장윤우’라는 근거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 하지만 우리는 이 시의 수소가 ‘시인 장윤우다’ 라는 심증을 버릴 수 없다. 그가 제12시집까지 내면서 묵묵히 시에 정성을 쏟으며 살아온 삶의 모습이 마치 황소가 주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참으며 살아온 것과 유사한 까닭이다.
다음의 시도 같은 문맥으로 읽힌다.
드물게 화창한 날
집안에 나혼자 뒹굴며
아까운 나이를 손가락으로 되짚으며
괜스리 술잔에 독백(獨白)하는
중년객(中年客)이라면 너절한 꼴일까
먼지쌓인 서가(書架)에 걸맞는
낙서로 꽉찬 인생의 머리에
하얗게 내리는 무상(無常)
눈가의 주름과 한숨으로 찌르는
좋은 날 오후의 무심한 강(江)
남긴거라곤 찡그리게하는 배설물
오자(誤字)투성이
죽음과 삶 사이에서 꼭 죽어야 겠다고
20일간에 250편의 시를 써낸
박정만(朴正萬)으로 문단이 벌컥 뒤집혔는데
비인 잔(盞)으로
자조(自嘲)의 저녁을 맞는다
오늘도 별 수 없이-
<오자(誤字) 인생>전문
이 시의 서정적 자아 ‘나’가 곧 시인 자신이라 할 근거는 없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할 근거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란 말인가. 그러나 이 시에 동원된 사물, 상황, 사건을 감안할 때 ‘나’는 시인 자신으로 규정하는 것이 맞다.
이렇게 이 시인은 자신을 오자인생이라고 자탄하면서도 시 때문에 갈등하며 오늘도 뒹굴며 시를 쓴다. 일반인들에게는 박정만 시인이 20일간 250편의 시를 썼건, 350편의 시를 썼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막무가내 식 시 쓰기가 그들의 가치관으로 보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윤우는 박정만의 그 도저한 예술혼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시를 위해 바쳐온 자신의 인생이 자조로 돌아오는 까닭이다.
이래서 ‘장윤우=황소’가 된다.
장윤우는 이제 초월과 탈속을 꿈꾼다. 뚜벅이 반추 한 생애의 정리단계에서 이름 없는 것이 이 세상에 가장 오래 남는 것이라며 그런 것을 노래한다. 그리고 한 쪽 발은 벌써 다른 세계를 디디고 서 있다.
높고 광활한 하늘을 떠가며
내려다 보는 새의 눈에는
이름없는 것에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 리 없는
길고 긴 모래톱에 씻기는 작은 조개껍질
네게 무엇이 필요한가에 회의한다
하필 중국 주석 장쩌어민이 와 있는 데서
전직 대통령이 오늘 수감되다
벌집쑤셔놓은 정국
한해 돌풍이 방향도 없이 몰아친다
모래알에 비하면 콩알크기도 족한걸
견불(見佛)하니 세상일이 부질없도다
권력,돈,명예,모두 물거품인걸
그러므로 나는 정리련다
소리없는 소리와
말없는 말로서
이름없는 것들만 생각한다.
우리는 무슨 인연으로 함께 하는가를 회의한다
이름있는 것이 이름없음이며
참으로 오래 남는 것이 바로
이름없는 것임을 생각하고 있다.
<이름 없는 것들을 생각한다-넓은 바다에서 퍼올린 이야기>전문
무명의 존재가 참다운 존재라는 이 역설 다음에 이 시인은 지금 ‘어디고 멀쩡한데라곤 없는 썩은 세상에’ 자신이 증류수 같이 말라버릴 위인‘이 될까 두려워 하고 있다. 72년 인생이 구겨진 달력 같고, 삶이 너무 애련하다며 슬퍼한다. 시와 그림을 넘나들던 도저한 강기(剛氣)가 시의 밑바닥에 그대로 부글거리고 있다. 그러나 그건 이제 세월과 연륜에 밀려나고 있다. 그래서 적멸(寂滅)의 세계를 향한 한줄기 검은 색대가 시상을 가로 지른다.
나이 칠십(七旬)이 되면 귀신이 돼간다
눈치코치, 모두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
귀 닫고 눈도 아예 감는다
이 나이에 무얼 더 바라겠나만
왜 이리도 가슴은 답답한가
구절양장(九折羊腸) 굽이굽이
길 따라 돌고 돌아가는 그곳을
나는 알아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갈 친구들은 이미 알아서 넘어갔다
정다운 이웃, 아리따운 여인들
죽마고우(竹馬故友)들
사랑하는 이, 모두 나를
헌신짝 차버리듯이 내차버렸다
이젠 좇아갈 기력도 험한 돌길도 힘겹기만 하다만
마지막 한 곳 꼭 보아야 할 곳이 어디에 있다기에
나는 멈칫거린다, 갈까 말까나
드디어 강원도 땅 무릉도원(武陵挑源)인가
정선아라리에 묻어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내가 넘어간다~'
덩실 춤을 추면서 숨을 몰아쉬면서
머무른 구름과 산새도 쉬어 넘는
산골에 왔다
세월의 애환(哀歡)을 싣고
강물은 느릿느릿 흘러
흘러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먼저 간 분들에게
나도 보았노라고
돌아가면 말하련다
<이제 살만큼 살았고 볼만큼 보았다>전문
뚜벅이 황소 장윤우가 드디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구절양장 삶의 구비마다 만났던 친구, 여자, 이웃이 앞서 넘은 그 고개를 향해 벌써 그도 한 발을 내 디뎠다. 자신도 속절없는 한 줄기 강물로 흘러 갈 존재임을 깨닫고, 영원한 안식처 무릉도원을 꿈꾼다. 이 시인의 이런 순응이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시상이 이러 하지만 그건 자연의 한 순리가 아니겠는가.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인데 희수가 지난 시인이 여전히 고개를 빳빳이 쳐들기만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역순리의 행위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갑년을 갓 넘긴 듯한 콧수염을 한 멋쟁이 시인 장윤우가 여전히 건재하며 우리 곁에서 세상을 향해 날리는 예각(銳角)의 소리, 존재하나 수동적이라 존재성이 약한 것이 아닌, 시로 현실에 참여하여 사회의 한 귀퉁이를 밝힐 것을 믿는다. 그의 소신 있는 강강한 비판의 목소리가 시의 이름으로 2010년의 신춘문단을 향해 다시 열릴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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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우 시인 연보
아호 목훈(木薰)
1937.12.1 서울 출생
1963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겨울 동양화」,「전설을 고발하는 자」2편 당선
1956~6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 대학원 졸
1966~현 한국문인협회원, (시분과회장 부이사장, 홍보위원장, 월간문학발행인 역임),
현 서울신문 출신 당선작가회 ‘서울문우회’ 회장
1962~3.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환교수.
1970~현 성신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산업미술연구소장, 산업대학원장, 박물관장 역임)
1970~2002 서울대, 고려대, 성대, 경희대, 숙대, 원광대, 단국대, 상명대, 한양대, 강원대, 청주대, 세종대, 서울산업대 및 대학원 강사 역임
1986 미국 Califonia 주립대 (CAL State LA) 연수
1989~90 문예진흥원 미술지원 심의위원
1990 12차 세계시인대회(WCP) 참가.
2001~ 문광부산하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이사장역임(5년간) 현 자문위원장.
2000~현 한국종이접기협회 회장/ 종이문화원장, 종이미술박물관장.
저서
*시집
「겨울동양화」, 「속 겨울동양화」, 「시인과 기계」, 「화가 슬픈 성주의 손」, 「두 사람의 풍경과 리삼월」, 「그림자들의 무도회」, 「세 번의 종」 , 「형해의 삶」, 「그 겨울 전차 포신이 느린 그림자」, 「이름 없는 것들을 생각한다」, 「오자인생」, 「뚜벅이 反芻」종이로 만든 여자 .....
*수필집
「화실주변」, 「장윤우 예술시평집」, 「그림과 시의 팡세」
*기타 저서
「중학 미술교과서 1」,「중학 미술교과서 2」,「중학 미술교과서 3」(교육부 검정도서) , 「공예재료연구」, 「공예재료학」, 「도학 및 제도」외 다수.
*편저 「로댕의 일생」「그림과 시의 팡세」외-
*수상 경력
1983 한국미술문화대상전 초대작가상 , 1986 동경아세아미술대전 초대작가상 , 1983 한국현대시인상(한국현대시인협회)
1986 동포문학상(한국문인협회) , 1991 시와 시론 본상, 순수문학 대상 , 1961 국방부장관 공로상(57호)
1976 한국문인협회 감사패, 영화평론가협회 감사패, 광운대학교총장 감사패
1982 한국귀금속공예회장 감사패, 백제미술대전 감사패 무궁화클럽감사패 ,
1991 한국예술문화 특별공로상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 1991 문교부장관 표창 (201호)
1996 국무총리 표창(30717호), 1997 한국미술창작협회 감사패
1998 서울시 문화상(미술), 헌법재판소장 감사패 , 2000 국제예술문화상(예술의 전당)
2002 영랑문학대상 수상 , 2003 예총 예술문화 대상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2003 한맥문학 대상, 서포문학 대상. .2004 국민훈장 황조근정 훈장 , 2006 제8회 시예술상 수상
2008 한국농민문학대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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