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웃는 기와/이봉직

시인 최주식 2012. 9. 17. 22:00

웃는 기와

 

옛 신라 사람들은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

기와 하나가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쪽이
금가고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한 번 웃어주면
천 년을 가는
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
웃는 기와 흉내를 내 봅니다

―이봉직(1965~ )

이 동시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신라의 웃는 얼굴 무늬 수막새를 보고 쓴 것이다. 웃는 얼굴 무늬의 기와를 얹어 집을 짓고 산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웃음이 그칠 날 없었을 것이다. 웃는 기와는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쪽이 금이 가고 깨졌어도 웃음은 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웃음은 천 년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들에게 여전히 초승달 같은 웃음을 보여준다. 웃는 기와는 천 년의 미소인 셈이다.

웃음은 얼굴이 깨어지고 금이 가도 천 년을 간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웃음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웃음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초승달 같은 웃음일 것이다.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보일 듯 말 듯 웃는 웃음은 마치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우리도 웃어주자. 자신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초승달 같은 웃음을 웃어주자. 그러면 그 웃음은 자신에게는 살아가는 힘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오래 기억되는 미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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