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우걸
자주 먼지 털고 소중히 닦아서
가슴에 달고 있다가 저승 올 때 가져오라고
어머닌 눈감으시며 그렇게 당부하셨다
가끔 이름을 보면 어머니를 생각한다
먼지 묻은 이름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 내 이름을 써 보곤 한다
티끌처럼 가벼운 한 생을 상징하는
상처많은, 때묻은, 이름의 비애여
천지에
너는 걸려서
거울처럼
나를
비춘다
―이우걸(1946~ )
이름은 존재의 상징이다. 이름을 가진 후부터 우리는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로 서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입학날, 손수건에 처음 달았던 이름표의 추억! 이름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이지 싶다. 그래서 다시 보면 우리 이름에는 참 많은 연(緣)이 얽혀 있다. 부모 형제와 가문은 물론 고향의 명예나 수치까지 다 들어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는 당부는 무서운 경고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여된 이름이지만, 그 아래 우리 삶의 전부가 기록되니 일생의 구속이기도 하다. 저승 올 때 잘 달고 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은 더 두렵게 받들 수밖에 없다. 소중히 닦으며 나를 비추는 거울로 삼으며…. 머리가 맑아지는 가을 새벽에 이름을 새삼 쓰고, 오래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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