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친절―베르톨트 브레히트
1
차가운 바람 가득한 이 세상에
너희들은 발가벗은 아이로 태어났다.
한 여자가 너희들에게 기저귀를 채워줄 때
너희들은 가진 것 하나도 없이 떨면서 누워 있었다.
2
아무도 너희들에게 환호를 보내지 않았고, 너희들을 바라지 않았으며,
너희들을 차에 태워 데리고 가지 않았다.
한 남자가 언젠가 너희들의 손을 잡았을 때
이 세상에서 너희들은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3
차가운 바람 가득한 이 세상을
너희들은 온통 딱지와 흠집으로 뒤덮여서 떠나간다.
두 줌의 흙이 던져질 때는
거의 누구나 이 세상을 사랑했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
한 무명용사의 일대기인지 모르겠다. 한 무모한 혁명가의 일대기인지, 한 범부(凡夫)의 일대기인지 모르겠다. 다만 춥고 쓰린 일생을 이토록 간략히 적었다. 내 아버지의 일생만 같다. 가진 것, 물려받은 것 하나도 없이 태어나 떨면서 누워 있었고 힘겹게 성장했으나 누구도 '차에 태워 데리고 가지 않았다'. 다만 한 남자가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그가 누구였을까. 임종(臨終)을 지키는 신부(神父)였을까? 영광의 꽃다발은커녕 '딱지와 흠집'으로 뒤덮인 채 이승을 하직한다. 서러운 것은 그럼에도 이 세상을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사를 들여다본다. 세상을 그토록 사랑했으나 무엇 하나 받은 바 없는 이름 없는 사람들은 '세상의 친절'이 이 정도라고 꼬집고 있다.
'가슴으로 읽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의 소회 秋日遣興(추일견흥)/김윤식 (0) | 2012.11.25 |
---|---|
가을 햇볕/고운기 (0) | 2012.11.25 |
과일/박두순 (0) | 2012.11.25 |
이름/이우걸 (0) | 2012.11.25 |
점집 앞 / 장석주 (0) | 2012.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