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메아리/신형건

시인 최주식 2012. 11. 25. 22:28

메아리/신형건

 

네가 소리쳐 부르면
난 우뚝 산으로 설래.
네 목소린 내 마음속에
깊이깊이 울려 퍼지겠지.
그걸 메아리로 돌려보낼래.
―너를 좋아해!
―너를 좋아해!
―정말이야!
―정말이야!
그러다 가끔 넌 장난도 치겠지.
―널 미워해!
그럼 난 움찔 놀랄 거야.
하지만 난 흉내쟁이가 아냐.
얼른 또 다른 메아리를 만들래.
―그래도 난 널 좋아해!

―신형건(1965~ )

어렸을 때 혼자 산에 올라 곧잘 메아리를 불러내곤 했다. 메아리는 언제 불러내도 내가 기쁠 때는 기쁜 목소리로, 슬플 때는 슬픈 목소리로 변함없이 대답을 보내왔다. 저녁놀이 뜨면 빨간 저녁놀 빛깔로, 산머루가 익어가면 까만 산머루 빛깔로 한결같은 대답을 보내왔다. 언제나 불러낼 수 있는 메아리가 있어 나는 외롭지 않았다.

네가 소리쳐 부르면 우뚝 산으로 서서 네 목소리를 메아리로 돌려보내겠다는 생각이 참 아름답다. 산을 향해 '너를 좋아해!' 소리치면 메아리도 똑같이 '너를 좋아해!' 하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런 메아리도 가끔 장난을 친다. 친한 사이라도 가끔 얄궂은 장난이 끼어들 듯. 그러나 '널 미워해!' 하고 말해도 '그래도 난 널 좋아해!' 하고 대답해 줄 테다. 얼른 또 다른 메아리를 만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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