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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과 지배의 문명史… 그 불평등은 환경 때문이다"

시인 최주식 2012. 11. 30. 22:22

이갑수 시인이 읽은 '총, 균, 쇠'
銃·菌·쇠를 다양성의 키워드로 역사·과학 결합해 알기쉽게 설명
산업국가가 수렵부족보다 발전? 당대엔 수렵이 가장 현대적인 것

이갑수 시인·궁리출판 대표
아메리카는 아메리카이고, 유럽은 유럽이다. 말하고 보니 그저 지도처럼 조용하다.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인이, 아시아에는 아시아인이 산다고 해본다. 한 글자를 추가했을 뿐인데 삶에 들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떠들썩해지는 것 같다.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묘한 함수인가. 그리고 그 인간이란 함(函)에 들어갔다 나오면 세계는 얼마나 난해한 방정식으로 변하는가.

아주아주 오래전 인간의 기원이 시작되고 또 한참의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가난뱅이 무명 화가 시절을 청산하기로 결심한 인간은 동굴 밖으로 뛰쳐나와 각 대륙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짐승을 가축화하고 식물을 작물화하면서 자연의 일부를 관리하고 통제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각 대륙에는 서로 다른 문명이 건설되었다.

1972년. 열대의 섬 뉴기니에서 새의 생태를 연구하던 저자(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한 토박이 흑인정치가로부터 뜻밖의 질문을 받는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물건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물건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세계의 지역적 불평등에 의문을 품었던 저자는 이 질문에 촉발되어 스스로 많은 질문을 만들면서 이 주제를 파고든다.

"왜 각 대륙의 문명의 발달 속도에 차이가 있는가." "왜 어떤 민족은 지배하고 어떤 민족은 지배당하는가." "왜 인류 사회는 서로 다른 운명을 지니게 되었는가." 사람들의 얼굴이 다르듯 민족 간의 생리적인 차이가 다른 문명을 낳았다는 게 그간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하지만 저자에게 역사란 '지겨운 사실의 나열'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그간의 역사가 외면했던 자연과학 분야의 지식을 동원해서 그 원인을 밝혀나간다.

인류의 역사는 정복과 지배로 점철됐고, 그 결과가 각 민족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그렇다면 어떤 원인으로 그러한 결과가 일어났을까. 왜 유럽이 다른 대륙의 원주민을 정복했을까. 역사에 과학을 결합시킨 저자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철의 등장은 식량의 생산성을 높였다. 이는 인구의 밀집을 초래하고 제도를 정비하여 우월한 힘을 가능케 했다. 한편 유럽인들이 원주민을 제거하는 데에는 총의 역할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유럽은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병원균도 창궐했다. 이로 인한 전염병이 면역성이 전혀 없던 원주민들을 초토화시킨 것이다. '총, 균, 쇠'는 이처럼 인류 문명의 다양성을 지탱하는 여러 요인을 대표하고 함축하고 있는 열쇳말이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사를 바라보고 기술하는 저자의 관점이다. 통상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원시-고대-중세-근대-현대의 시대로 구분하고 이를 탑처럼 쌓으려고 한다. 그리고 나중 시대가 더 나은 시대인 양 생각한다. 그러나 당대는 그 당대로서 모두가 현대적이다. 우리의 기억이 흑백일 뿐 과거는 과거에 모두 총천연색의 세계였다. 저자는 '산업화된 국가가 수렵 채집민 부족보다 낫다든지, 수렵 채집민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철 중심의 국가로 전환하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중심주의도, 서구중심주의도 벗어난다. 때로는 식물의 입장에서, 때로는 세균의 입장에서 기술할 정도다.

저자는 환경 조건이 지난 1만3000년간 전 세계인의 역사에 미친 영향을 밝히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일들이 인류의 미래에 일어날 것인지를 알 수 있으리라고 했다. 어쩌면 문명이란 시간이라는 거대한 공룡이 퍼질러놓은 한 무더기의 똥일는지도 모른다. 공룡은 시시각각 사라지고 있다. 그 공룡의 행방을 안다면 우리는 미래를 알 수도 있을 것이다. 한때 인간은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면서 나아갈 길의 지도를 읽었다. 그러나 이제는 고개를 숙이고 발밑의 그 무더기도 파헤쳐 보라고 저자는 권하는 것 같다.

몇해 전 고향 집안 할머니의 백수연에 참석했다. 한 생명이 몸을 받아 한 세기를 온전히 건사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첫돌상이야 누구나 받을 테지만 백돌상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다. 서울의 어느 예식홀에서 벌어진 잔치에 갔더니 고향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왜 고향사람들은 한눈에 보아도 척 고향사람일까. 뜯어보면 얼굴도 성(姓)도 다 다르지만 풍기는 인상이나 행동거지가 왜 다들 비슷할까. 우리는 같은 물, 쌀, 햇빛을 먹고, 같은 사투리를 쓰면서 같은 들판과 골짜기에서 자랐다. 혹 그런 지리적 조건 때문에 그런 것일까. 저자의 흥미로운 설득력에 나의 오래된 의문 하나도 확 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