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유정이 본 '뻐꾸기…'
미치도록 좋은, 소설속 세 장면 - 맥 머피와 추장 첫 만남, 가슴떨려… 전기충격당하는 추장의 의식 속…
모욕·존엄 확인하는 마지막 부분

영화와 소설의 가장 큰 차이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화자에 있다. 영화는 맥 머피를 선택했으나 소설의 1인칭 화자는 빗자루 추장이라 불리는 브롬든이다. 켄 키지는 추장의 입을 빌려 '콤바인'이라는 정신병원으로 상징되는 체제에 맞서다 희생되는 인물과 그를 통해 자유 의지를 되찾아가는 인물을 격정적으로 그려낸다.
부조리한 체제와 이들을 둘러싼 정치 지형(특정 이념이 아닌 힘의 역학관계), 저항정신, 문학적 상징이나 주제 등에 대한 '심오한 탐구'는 잠시 미뤄놔도 좋겠다.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존재 브롬든과 교도소의 강제 노동을 피하려고 정신병원에 들어온 건달 오빠 맥 머피를 그저 따라가 보는 것이다. 힘을 빼고, 이야기가 끄는 대로 끌려가는 게 엔터테인먼트로서 작품을 즐기는 자세다. 영화를 먼저 본 독자라면 잭 니콜슨이 소설 속 맥 머피를 얼마나 완벽하게 표현해냈는지 확인하는 즐거움을 덤으로 누릴 수 있다. 악마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모습이라든가,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 담배를 입에 문 채 한쪽 눈을 가느다랗게 뜨면서 수간호사 랫치드를 바라보는 모습이라든가.
일러스트=오어진 기자 polpm@chosun.com

나는 브롬든 추장과 맥머피가 처음 만나는 장면을 좋아한다. 남자들 간의 악수라는 의례적 사교행위를 이토록 가슴 떨리는 기대감과 긴장감이 넘치는 행위로 묘사해낸 소설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추장이 맥 머피의 손에서 그의 인생을 읽는 순간이고, 맥이 추장의 귀머거리 행세를 간파하는 순간이며, 맞잡은 손아귀의 감촉에서 두 사람의 비극적 우정이 태동하는 순간이다. 얼마 후 우리의 빗자루 추장이 맥 머피의 침대 밑을 쓸다가 탁 트인 들판의 먼지와 흙냄새, 땀과 노동의 체향을 맡는 장면에 이르면 가슴이 다 아릿아릿해 온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건 추장이 전기충격요법을 받는 장면이다. 맥 머피와 함께 보조원을 살짝 손봐준 대가로 그는 전기 침대에 눕는다. 전류가 머리를 관통할 때 아득히 먼 그의 기억 속에서 "한 마리는 동쪽으로 날아가고, 한 마리는 서쪽으로 날아가고, 한 마리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갔네" 라는 인디언의 노래가 울리기 시작할 때 빗자루 추장을 가두고 있던 짙은 안갯속에서 마침내 거인 추장이 머리를 들고 일어선다.
가장 좋은 건 아무래도 저 유명한 마지막 장면이다. 진짜 모욕이 무엇인지,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으로 지켜지는지,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또 다른 재밋거리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희고, 입술에는 너무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가슴은 너무 큰 할망구' 랫치드 수간호사와 맥 머피의 대결이다. 안개, 콤바인, 끊임없이 음악을 내보내는 라디오 등등 수많은 은유와 상징 중에서 단연 인상적인 것도 랫치드의 '너무 큰 가슴'이다. 동물학자 한나 홈스의 말을 빌리면 '걸을 때면 흔들리고, 뛸 때면 출렁거리면서 주위의 시선을 모으고,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과 더불어 100m 떨어진 곳에서 훔쳐보는 인간에게 여성성을 타전하는 물건'이 브롬든에겐 강철처럼 차갑고 강한 억압의 상징이 된다. 그녀의 가슴에서 고압 전류 같은 젖줄기가 뻗어 나와 병동을 안개처럼 뒤덮고 그를 가둬버리는 것이다. 이 철의 여인은 결국 맥 머피를 수술대로 보내고 만다. 맥은 전두엽 절제술을 받고 구제 불능의 '얌전이'가 돼서 돌아온다.(전두엽 절제술은 폭력성에 대한 해결법으로 당시에 각광받던 수술이었다. 이 용감하고 무식한 수술의 창시자 가스 모니스는 노벨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원 세상에.)
전두엽은 정서와 의지 집행, 통제 기능을 관장하는 곳이자 엔터테인먼트의 본거지다. 그리고 인간은 전두엽이 가장 발달한 동물이다. 오늘 밤 전두엽의 축복을 마음껏 누려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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