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남진우가 읽은 '도리언…'
'예술을 위한 예술' 실천가 와일드… 탐미·자기애를 전투적으로 펼쳐
소설 곳곳엔 경쾌·역설적 경구… 만년의 작가, 가난·불명예로 점철

여기 세기말을 대표하는 탕아 작가의 악덕 소설이 있다. 유난히 성에 대해 엄격하면서도 위선적인 도덕률을 유지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 46년이란 짧은 생을 살다 간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바로 그것이다. 퇴폐미학의 바이블, 우아한 탐미주의의 교본, 낭만주의의 자기애적 컬트의 결정판, 환상소설이면서 호러소설의 전범이기도 한 이 작품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생생한 현재성과 당대성을 갖고 있는 문제작이다.
흔히 '예술을 위한 예술'의 이론가이자 실천가로 평가받는 오스카 와일드는 이 작품에서 전투적으로 자신의 세계관과 예술론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소설은 세 명의 주요 인물이 이끌어나가고 있다. 눈부신 미모를 과시하는 청년 도리언 그레이, 그의 매력을 화폭에 옮기는 화가 바질 홀워드, 화가의 친구이자 풍자와 역설을 즐기는 헨리 워튼경. 이들은 각각 모델-작가-관객(비평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도리언은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화가 바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헨리의 유혹적인 언변에 넘어가 점차 사악한 관능과 타락의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악마와 계약을 맺는 전설 속의 주인공들이 그러하듯 도리언은 언제까지나 청춘을 유지하고 대신 초상화가 나이를 먹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그 다음부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현실 속의 그는 변함없이 이십대의 젊고 수려한 용모의 소유자인 반면 초상화 속의 얼굴은 추악하게 늙어간다. 그를 사랑하던 순진한 소녀를 절망에 빠트려 자살하게 만든 사건을 시작으로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최악의 인물이 되어간다. 관능적 향락과 경박한 유희를 즐기며 그는 상류계층의 화려한 살롱과 하층계급의 어두컴컴한 아편굴을 넘나드는 모험을 벌인다. 그는 직접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살해 위협을 받기도 하는 등 극단적인 상황을 오간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자신을 대신해서 나이를 먹고 부패해가는 초상을 보며 고통과 번민에 사로잡힌 도리언은 끝내 칼로 화폭을 찌르고 말지만 어느 새 그 칼은 자신의 가슴에 박혀 있다. 순식간에 초상화는 원래의 젊은 모습을 되찾고 도리언은 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쇠약하고 주름진 사내의 모습으로 변해 죽어 있다. 비도덕적인 작가의 너무도 도덕적인 결말이 의외인가? 작가 자신도 생전에 그러한 결말 처리에 대해 후회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 작품은 그 덕분에 현실원칙과의 타협을 원하는 대중의 호응을 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스카 와일드의 만년의 삶은 불우했다. 그의 삶은 온통 동성애 스캔들로 뒤덮였고 법정에선 옹졸한 검사 앞에서 자신의 예술론을 변호해야 했다. 그는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수감됐으며 프랑스로 망명하다시피 떠났다. 그의 작품은 무대에 올리는 것이 금지되었고 무일푼이 된 그는 길에서 만난 친구들에게까지 손을 벌려야 했다. 이처럼 가난과 불명예로 점철된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임종의 침상에서 그다운 농담을 남겼다. "이것은 분명 분에 넘치는 죽음인걸!"
오늘날 뉴욕이나 런던, 파리, 함부르크 같은 구미 대도시를 여행하다보면 오스카 와일드라는 이름이 붙은 바나 레스토랑, 서점, 극장 등을 만날 수 있다. 물론 그곳은 대부분 게이들이 모여드는 동성애자들의 소굴이다. 저승의 와일드가 이를 보고 한마디 한다면 다음과 같은 말이 되지 않을까. 이것은 분명 분에 넘치는 대접인걸!
140자 트윗독후감
"정신에 독이 되는 책이라. 그런 책은 없다네. 예술은 인간의 행동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아. 예술은 행동하고자 하는 욕망을 파괴할 뿐이지. 아름다운 불모성, 그게 예술의 특징이라네."(트위터 응모자 방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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