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파워클래식

로빈슨크루소/오직 한 번만 사는 인간… 리허설없는 배우와 같다

시인 최주식 2012. 12. 23. 22:16

 

열세 번째 작품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명사 101명 추천 도서 목록은 chosun.com
마지막 장 덮으면, 다시 첫 장 펼치고 싶은 책


[광고인 박웅현이 읽은 '참을 수…']
철학·역사적 문맥·시대적 통찰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녹여내
쿤데라, 그의 머릿속 직조의 기술… 도무지 나로서는 파악 못하겠다

광고인 박웅현씨.
네 번을 읽은 책이다. 한 번은 읽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한 번은 정말 궁금해서. 한 번은 놓친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마지막 한 번은 강독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읽으며 나에게 울림을 주었던 문장에 줄을 치고 그걸 타이핑해 두었다. 10포인트 글자로 A4용지 30페이지 분량. 강의를 한다면 세 시간으로도 모자라는 양이었다. 그 감동을 어찌 전할까? 이 엄청난 매력 덩어리를 이 짧은 원고에 어찌 담을까? 음, 맛보기를 조금 드리는 게 낫겠다. 짧은 에피소드 세 개에 담아서. 맛보기가 맛있어서 직접 이 책을 읽어보시길 바라며. 지금부터 당신이 읽을 세 글 중 따옴표 안의 문장은 모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그대로 인용한 맛보기이다.

1.

당신은 지금 신문을 읽고 있다. 잘한 결정인가? 신문을 덮고 산책하는 게 더 좋은 선택 아닌가? 어찌 알겠는가? 산책을 하다 일생일대의 사랑을 만날지. 혹은 이 신문을 계속 봐야 하는가? 어찌 알겠는가? 신문을 보다 일생일대의 아이디어를 건질지. "사람이 무엇을 원해야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우리는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인생을 산다." "물리 실험 시간에 중학생은 과학적 과정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 번밖에 살지 못하므로 체험에 따라 가정을 확인해 볼 길이 없고, 따라서 그의 감정에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런 면에서 인생은 오리무중이다. 솔직히 우리는 우리가 뭘 원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며 하루하루를 산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항상 베일에 가려 있는 법이다. 결혼을 원하는 처녀는 자기도 전혀 모르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명예를 추구하는 청년은 명예가 무엇인지는 결코 모른다."

2.

당신은 남편이다. 부부 싸움을 했고 아내는 친정에 가버렸다. 잘 갔다 싶었다. 잔소리 없는 천국이었다. 친구들과 술도 실컷 마셨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당신은) 미래의 저편으로부터 존재의 감미로운 가벼움이 다가옴을 느꼈다." 하지만 월요일 아내에 대한 동정심이 일었다. "한 손에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른 손으로 아이 손을 잡고 힘없이 친정에 들어서는 아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틀 동안 동정심이 쉬고 있었던 것이다." "동정심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결국 당신은 처가에 가 사과를 하고 아내를 데려왔다. 하지만 당신이 꼭 그래야만 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날 밤 아내가 잠을 자다 코를 골았다. 당신은 "추호의 동정심을 느끼지 못했다. (당신이) 느낀 유일한 것은 위(胃)를 누르는 압박감"이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3.

절세 미녀의 똥. 자상한 아버지의 폭력. 7성급 호텔의 쓰레기 냄새. 배은망덕한 자의 의리. 당신은 이 문장들에 불편함을 느낀다. 절세 미녀에게는 똥이 없어야 하고 자상한 아버지는 폭력을 몰라야 한다. 7성급 호텔에는 쓰레기 냄새가 없어야 하고 배은망덕한 자는 의리를 몰라야 한다. 그래야 당신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똥이 부정되고, 각자가 마치 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신하는 세계를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미학적 이상을 키치라고 한다." 키치란 말하자면 편집이다. "키치란 본능적으로 똥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다. 키치는 자기 시야에서 인간 존재가 지닌 것 중에서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배제한다."

알랭 드 보통의 글을 보면서 나는, 도대체 어릴 때부터 어떤 교육을 받았기에 그런 통찰력을 가질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톨스토이를 읽으면서 나는, 인생 전체를 관조하는 한 대가의 꼼꼼한 시선을 느꼈다. 족탈불급. 그들을 따라갈 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이해 범위에 들어온다. 적어도 그들이 어떻게 소설을 구성했는지는 그려진다. 그런데 밀란 쿤데라의 머릿속 풍경은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다. 어떻게 그렇게 철학적 사고와 역사적 문맥, 시대적 통찰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절묘하게 녹여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나의 주제를 성과 사랑, 정치와 역사, 신학과 철학으로 변주해 나갈 수 있는지. 그 직조의 기술이 나에게는 도무지 파악되지 않는다. 그래서 놀라운 책이다. 아름다운 사랑과 심오한 철학과 예리한 통찰이 신비하게 직조되어 있는 책.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다시 첫 장을 펼치게 만드는 책. 노벨상은 뭐 하는지 모르겠다. 참을 수 없는 책이다.

140자 트윗독후감

"가벼워서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나쁜 남자에게 끌리다 질려, 듬직한 착한 남자를 찾는다는 연애관이 현대적 트렌드만은 아니었다. 상대의 사랑이 가벼우면 내가 무거워지고, 반대면 역시… , 사랑은 아니 인생은 결국 균형을 이뤄가는 것이었다." (트윗 응모자 ecogreenteac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