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우리 집/박남수

시인 최주식 2012. 11. 30. 22:44

우리 집

큰길로 가다가
작은길로 접어들면
숨막히는 좁은 골목에
숨이 막히는 집이 있습니다.

높은 집이 가로막혀
납작 눌려 코가 눌린
코납작이 동네에
코납작이 집이 있습니다

그래도 못 찾으시겠으면
쫄망쫄망 조롱박 형제가 많아서
늘 엄마 목소리가 큰 집만 물으시면
거기가 우리 집이죠.

―박남수(1918~1994)

요즘 납작한 집들이 사이좋게 쫄망쫄망 모여 살던 골목길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면서 골목길의 아이들과 참새들도 사라지고 있다. 아이들이 공을 차다가 등을 대고 해바라기를 하던 담벼락도, 참새들이 떼 지어 앉아 재잘대던 전깃줄도 사라지고 있다.

이 동시를 읽으면 좁은 골목에 형제가 많아서 늘 시끌시끌하던 조그만 집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쿵쾅쿵쾅 뛰는 소리, 엄마가 큰 소리로 야단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저녁 늦게 엄마가 큰 소리로 '밥 먹어라' 부르는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비록 못사는 집이지만 사랑이 있는 집이기에 얼마나 크고 당당했을까. 그러기에 아이는 골목길 코 납작한 집이지만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당당히 자기 집을 소개하는 것이다. 조롱박처럼 쫄망쫄망한 아이들을 키우려고 목소리가 커졌을 엄마의 사랑이 가득한 집처럼 큰 집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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