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까치 주려고 따지 않은 감 하나 있다?

시인 최주식 2013. 1. 1. 22:04

까치 주려고 따지 않은 감 하나 있다?

혼자 남아 지나치게 익어가는 저 감을 까치를 위해 사람이 남겨놓았다고 말해서는 안 되지 땅이 제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감나무가 웃을 일 제 돈으로 사 심었으니 감나무가 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저 해가 웃을 일 그저 작대기가 닿지 않아 못 땄을 뿐 그렇지 않은데도 저 감을 사람이 차마 딸 수 없었다면 그것은 감나무에게 미안해서겠지 그러니까 저 감은 도둑이 주인에게 남긴 것이지

미안해서 차마 따지 못한 감 하나 있다!

얼었다 녹는 감을 새들이 와서 파먹는다. 까치도 먹고 참새도 먹는다. 지난가을 저 감을 새들을 위해서 남겨두었던가? 아니다. 그저 애써 따려다 실패한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까치밥이라고, 우리들의 여유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손에 닿는 데 있는 것을, 그것도 좀 넉넉히 남겨 놓았다면 그렇게 말해도 되겠으나 그런 제대로 된 까치밥을 보는 데는 폐가(廢家)이거나 절간이다.

사람은 욕망의 동물이고, 게다가 자기합리화의 동물이다. 정말 까치밥을 남길 줄 아는 지혜를 기르는 것이 생활 속에서의 작은 수행일 것이다. 까치를 부르는 여유, 감나무에 놀러 오는 새의 모습과 소리에서 삭막한 겨울 풍경을 따스하게 만들 줄 아는 여유를 진실로 가질 일이다.

감을 따며 또 여러 유실수의 열매들을 따며 당연히 제 것이라고 여기지 말아야겠다. 햇빛과 비바람과 여러 절기(節氣)의 합창으로 만들어낸 열매가 당연지사 내 것이라고? 고개 숙여 절하며 따 먹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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