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와 주목나무에게 배우는 삶 / 최주식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봄에는 목련과 산수유꽃, 제비꽃, 민들레꽃 등 꽃이 만발하여 온통 꽃천지가 된다. 온갖 공해와 오염의 도시, 더 많이 가지려 질주하는 소란스런 욕망의 도시를 벗어나 산에 간다. 버스를 타든, 전철을 타든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산이 있어 어렵지 않게 산에 가는 설렘과 기쁨을 누리고 산다. 숲 사이 오솔길을 걸으면 땅의 기운이 온 몸에 퍼지고 발밑에서 불쑥불쑥 즐거운 일이 솟아오를 것만 같다. 철따라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대자연의 법칙을 보면 한 송이 꽃, 한 마리 새, 풀 한 포기, 한 방울의 물도 사람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느끼게 된다.
산에는 상식에 어긋난 거짓도 없고, 지고 이기는 것도 없으며, 필요 이상을 탐하는 것도 없다. 따라서 누구나 깊고 그윽한 마음과 밝은 미소로 정직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흙과 나무와 풀벌레와 꽃 그리고 바위, 짐승과 새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만물이 생동하는 큰 산을 만들어 낸다. 생각해보면 산에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주는 생명들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복수초와 주목나무라 할 것이다.
겨울 숲에서 가장 먼저 노란꽃을 피우는 복수초(福壽草)는 눈속에서 핀다고 하여 설연화, 얼음을 뚫고 나와 핀다고 하여 얼음새꽃, 눈색이꽃이라 부른다. 키 큰 나무 사이에서 자라는 키 작은 복수초는 나뭇잎이 돋아나 햇볕을 가리기 전에 일찍 꽃을 피워 열매를 맺어야 한다. 따라서, 복수초는 스스로 열(熱)을 발산해 주변의 눈과 얼음을 녹여 추위를 견디고 꽃을 피운다. 누가 보아도 살기 힘들어 보이는 얼음속의 복수초가 혼신을 다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결실을 이뤘듯이 사람도 주어진 상황이 고통스럽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말고 참다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살면서 경험하는 일이지만 행복, 사랑, 웃음, 즐거움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만들어야 하며 그 어떤 것도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태백산 주목 군락지에 뿌리내린 주목나무는 눈보라 비바람에도 위풍(威風)스런 모습으로 사시사철 푸르다. 항상 고독을 벗삼아 살아가는 주목나무는 몸뚱이가 벌거벗겨지고 갈라터지고 상처투성이다. 사람들은 고고한 품위로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견뎌왔음에 숭고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으며 환희심에 젖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는 일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단하고 복잡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주목나무처럼 강인하게 견뎌내야 늘 푸른 삶을 이루어 낼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탈출구를 쉽게 찾지 못하는 불안이 겹겹이 쌓여 있다. 10대는 입시, 20대는 취업, 30대는 육아, 주택, 교육, 40,50대는 가족 부양과 실업, 60,70대는 노후대비 불안으로 사회적 갈등과 함께 분노, 두려움, 시름, 외로움, 절망, 먹먹함 등 정신적 불안에 빠진 경우가 적지 않다. 삶은 언제나 또 다른 불안의 숙제를 안고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이 50대의 나도 사방에서 조여오는 듯 불안한 자화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라와 시대가 불안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인생 여정이라 해서 미래에 대한 계획과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사나운 추위를 뚫고 올라오는 복수초와 같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주목나무와 같이 사람도 얼었다 녹았다 열심히 삶을 가꿔가야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지금 당장 대책이 없다해도 결국 그 대책은 스스로 알아서 찾고 실마리를 풀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 미묘한 생명의 신비를 포착하게 되어 즐거움이 된다. 삶의 즐거움이란 돈과 명예와 권력이 전부는 아니다. 명품으로 치장하고 고급 호텔에서 향수로 목욕하고 식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가문 좋고 뒷배경 좋아 거액의 재산을 물려받고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은 신(神)의 자식보다 평범한 사람의 자식이 더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마음에 근심 걱정이 없고 불안감이 없으면 그게 바로 즐거움이요 행복이다.
어느 산이나 특별하지 않은 산은 없다. 사람의 심성에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있고 구불구불 세상의 잠을 깨우는 뜨거운 염원이 있다. 다시 한 번 봄의 전령사 복수초와 고독한 성자 주목나무를 떠올린다. 겨울을 이겨낸 복수초와 주목나무의 삶과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좋은 글귀가 겹쳐진다. 나는 계속해서 바람이 불어도 겨울에는 봄산을, 여름에는 가을산을 그리며 산에 갈 것이다. 인생 좀 더 배우고 싶어 서로 다른 존재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산에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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