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評·컬럼(column)

31호 심사평

시인 최주식 2013. 6. 5. 21:49

철쭉꽃처럼 / 진순미

 

입원하신 어머니를 위해 소불고기 재료를 사러 마트 간다. 비를 머금은 연분홍 철쭉꽃 앞에서 꼼짝할 수 없다. 보드라운 꽃잎 만지며 냄새도 맡아보고. 한참 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재료 사고 집으로 돌아와 느타리버섯, 팽이버섯, 양파, 마늘 넣고 불고기 양념으로 소고기를 버무린다. 아차, 파를 빠트렸다. 게으른 막내며느리가 큰맘 먹고 만든 소불고기를 아침마다 병원으로 가는 남편한테 주어야지. 새콤달콤한 칵테일포도와 같이. 금이 간 뼈가 빨리 붙기를 기도한다.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더니 거울 속에는 철쭉꽃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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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뒷모습

 

숲 향기 사이사이로 빠끔히 내민 햇살,
민달팽이 마중을 받으며 초록 산길을 아들과 걷는다
목적지를 알고 있는 녀석은 잽싸게 앞으로 내뺀다
따라가기가 벅차다
저 멀리 보이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구름 한 조각 빌려, 옛 기억을 스케치한다
임신 초기에 먹었던 감기약 때문에
시름시름 앓으며 보냈던 시간,
만삭의 몸을 안고 돌 틈으로 문수보살상을 보고 왔던 날,
태몽에 가끔씩 남자 아이 얼굴이 보였다
수술실에 누워 오들오들 떨리는 두려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 몽롱함,
배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차디찬 고통을 느끼며
건강한 사내아이와 그렇게 만났다
그 순간에 사르르 감동의 눈물,
엄마는 세상의 전부를 얻었다
벌써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너와 산행을 하니
참 좋다. 그냥
앞으로 힘차게 내달리는 아들아!
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만큼 커가겠지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씩 웃어주는 네가
참 고맙다. 그냥
네가 멘 무거운 가방처럼
너에게 짐은 되지 말아야 할 텐데,
산을 내려오면서 마주친 빨간 연꽃에
또 다른 그리움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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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유


올가을에 내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한쪽을 바라보는 자줏빛 사랑이 보입니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모습도 좋습니다

 

아침마다 그가 생각납니다

 

오늘은 배낭을 메고 그를 찾아갑니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그에게 달려가 안깁니다

 

눈 감고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갑니다

 

진한 가을 향기로 나를 밀칩니다

 

처음처럼 지켜봐 달라고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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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순미 시인의 응모작 5편을 심사한 결과 시를 생각하는 감성이 신선하고 시적 역량을 가늠할 수 있어 <철쭉꽃처럼> <아들의 뒷모습> <꽃향유>를 당선작으로 하여 한국 문단에 당당히 추천한다. ‘철쭉꽃처럼’은 흔히 만날 수 있는 일상을 표현하였는데 서정적 힘이 느껴진다.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행복을 찾고 때로는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결국은 그 일상에 파묻힐 수 밖에 감정을 산뜻한 감수성으로 담아내었다. ‘연분홍 철쭉꽃 앞에서 꼼짝할 수 없다.’ ‘아차, 파를 빠트렸다.’ ‘금이 간 뼈가 빨리 붙기를 기도한다.’와 같은 평이한 표현이지만 시어의 배열과 상호 관계가 적절하여 시적 긴장은 튼튼하고 옹골차다.

 

‘아들의 뒷모습’은 계속해서 진행형인 아들에 대한 사랑을 매우 간곡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산길을 앞서 걸어가는 아들의 모습에서 바위와 같은 든든함을 느끼고 엄마로서의 위로를 얻는다.  ‘산을 내려오면서 마주친 빨간 연꽃에/또 다른 그리움을 담는다’와 같이 지난 상황뿐만 아니라 눈앞의 상황도 달관적으로 받아들인다. 독자들도 엄마의 사랑만큼 상실되어가는 서정성을 강력하게 회복하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꽃향유’에서는 꽃향유를 다양하게 변주시켰다. ‘자주빛 사랑=소박한 모습=그=가을향기’란 등식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꽃향유를 찾아간 게 아니라 나를 찾아가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등식이라면 미움과 혼란의 현실을 초월하여 얻은 청정한 시다. 시를 절대적 가치로 인식한 시심이 아름답다.

 

진순미 시인은 삶에서 건져올린 작품으로 시적 상상력과 일상생활의 직관(直觀)을 보여주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나를 낮추는 훈련이다. 치열한 시인 정신으로 보다 더 성숙된 시인이 될 것을 기대하며,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