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과 기적(奇跡) / 최주식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다. 부부가 차에 연료를 넣기 위해 주유소에 갔는데 앞 유리를 닦아주었다. 남편은 직원에게 “아직도 유리가 더러우니 다시 닦아줘요”라고 말했다. 직원은 혹시나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이 있는지 살피며 유리를 닦았다. 직원이 일을 마쳤을 때, 남편은 화를 내며 “아직도 더러운데 당신은 유리 닦는 법도 몰라요? 한 번 더 닦아줘요” 라고 말했다. 직원은 또다시 빠뜨린 곳이 없는지 세세히 살피며 유리를 닦았지만 어디에도 지저분한 곳은 없었다. 그러나 남편은 더 크게 말했다. “유리가 여전히 더러워! 주인에게 말해 여기서 일하지 못하도록 해야겠어.” 하며,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내가 남편의 안경을 벗기더니 렌즈를 깨끗하게 닦아서 얼굴에 씌워주었다. 남편은 그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얼굴을 붉히면서 자리에 앉아 깨끗한 유리창을 볼 수 있었다.
매사에 불평 불만이고 부정적인 사람은 자신만의 안경을 쓰고서 모든 것을 시비(是非)의 대상으로 본다. 자신만의 안경을 통해서 보기 때문에 화를 내지만 실은 자신의 마음에 나타난 더러운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으며 자신만이 정의롭고 옳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배타적인 말과 행동으로 누구에게든 인신공격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인간다움’을 존중하는 휴머니즘이요, 인격을 바탕으로한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최고인듯 으시대며, 은근 슬쩍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 경계선을 만들려 한다. 삶의 현장에서 진솔하게 건져올린 다른 작가의 문학적 자기 표현을 자신만의 안경을 통해 바라보며 비아냥거린다. 이런 사람은 세상을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보는 눈이 없으며, 이해득실을 따져 좋으면 웃고 나쁘면 얼굴을 찡그리는 양면성이 있을 뿐이다.
자신만의 안경을 쓰고 모든 것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심오한 속뜻을 헤아려야 하는 “벽암록”을 여름 휴가 때 힐링삼아 읽어보기를 권한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 좋음과 나쁨을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있는데 벽암록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내용이 있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에는 애정을 가지지만 싫어하는 것에는 미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집착이라 하는데 자신은 물론 상대도 망가뜨리는 원인이 된다. 모든 일을 나의 입장에서 판단하면 남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고, 반대로 모든 일을 남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정리하면 나를 찾을 수 없다는 화두(話頭)를 벽암록은 주고 있다.
“격월간 서정문학”은 통권 제32호를 발간하고 33호를 준비 중이다. 나는 주변의 문인들에게 “격월간 서정문학”을 발간하는 일을 “기적(奇跡)”이라 말한 적이 있다. 문학지 발간이란 평범한 일이지만 자원봉사와 작가들의 공동체 의식, 자긍심이라는 새로운 문학의 패러다임으로 지금껏 한 번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기에 기적이라 말하는 것이다. 초능력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정문학이 걸어온 하루하루는 모두가 기적의 날이었다. 이 기적의 중심에는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가진 작가들이 있다. 탐욕과 이기주의에 찌든 척박한 사회에서 서로 다른 향기와 빛깔로 기적의 서정문학을 만들어 가는 여러분들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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