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문칼럼)

고전은 내 친구 <30>'벽암록'

시인 최주식 2013. 6. 12. 23:24

고전은 내 친구 <30>'벽암록'

 

타자가 홈런 욕심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힘이 들어간 타자, 아웃될 확률 높아요

집착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기 때문이죠

 

고양이 두고 싸우는 수행자들 앞에서

갈등의 원인인 고양이를 죽인 스님은

문제 그 자체를 없애 해결했어요.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세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다룬 책이 얼마나 될까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거예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말이에요. '스티브 잡스'가 주인공인 책은 또 어떻고요. 이들에 대한 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는 의미겠지요. 두 사람은 살아온 시대도, 했던 일도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큰 공통점이 있어요. '창의성의 아이콘'이라는 점이에요. 창의성의 보고인 책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볼 '벽암록'이랍니다. 선불교(禪佛敎)의 핵심 사상이 녹아 있는 책으로. '벽암록'에 담긴 창의성은 단순히 기발한 발상 자체가 아니에요. 그 속에는 창의적 문제 해결의 전형이 살아 숨 쉬고 있답니다.

 

 '벽암록'이 전하는 문제 해결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이 문제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것도 인간'임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문제란 어떤 것과 다른 것 사이의 충돌이나 갈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잖아요. 그렇기에 '벽암록'은 나와 남, 좋은 것과 나쁜 것 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 좋음과 나쁨 등을 나누게 마련인데, 이렇게 가치 평가를 내리고 나서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정말 어렵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들어봤을 거예요. '벽암록'의 시각으로 이 말에 담긴 문제에 접근해 보죠. 사람은 '나'의 존재가 있음을 전제하고, 그와 반대되는 존재로서 '상대방'을 인식합니다. 그러고서 나는 좋고, 상대방은 나쁘다는 식으로 가치 평가를 합니다. 그러면 상대는 나의 원수가 되지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 내면에 갈등이 생겨요. 겉으로는 좋아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미워할 수밖에 없고요.

 

 이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제를 문제가 되도록 한 시점 이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치 평가를 접고, 그다음으로 나와 상대방을 갈라놓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원래 상태로 회복시켜 보세요. 그러면 원수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되지요. 원수가 없다면, 그를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도 저절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벽암록'의 문제 해결법입니다. 문제가 생긴 근거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것이지요. 문제를 해결할 때 이처럼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은 창의적인 발상의 원천이 됩니다.

 

#이야기 하나

 남전 스님 문하의 수행자들이 고양이 한 마리를 두고 편을 나눠 다투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이를 보고 고양이를 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만 하면 고양이를 베지 않겠다." 수행자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스님은 고양이를 두 동강으로 베고 말았습니다. 남전 스님이 고양이 목을 자르고 나서 조주 스님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물었습니다. "그때 자네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조주 스님은 말없이 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남전 스님은 이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 자네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남전 스님은 왜 고양이 목을 벤 것일까요?

수행자들이 어떻게 했다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까요? 조주 스님은 왜 신발을 머리에 이고 밖으로 나간 걸까요? 이 모든 질문의 답은 하나입니다. "문제 자체로부터 벗어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고양이가 없었다면 갈등도 없었겠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남전 스님은 고양이를 없앤 것입니다.

 또 다른 해결법은 갈등하는 사람들 자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만약 모두가 그 자리를 떴다거나 고양이는 죄가 없으니 살려 달라고 말했다면 고양이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 조주 스님의 태도는 최선의 대응법이었던 거예요.

 

 '벽암록'에는 이런 방식으로 해결한 문제들이 가득 차 있어요. 사람들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에 애정을, 싫어하는 것에 미움을 가지고 있지요. 이 모든 것은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착은 나는 물론 상대도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곤 합니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바로 보이니까요.

 

#이야기 둘

 야구 선수가 홈런을 치겠다고 결심하고 마운드에 서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아웃될 확률이 매우 높아집니다. 욕심 때문에 마음에 부담이 생기고, 부담으로 근육이 긴장하게 되니까요. 그럼 반대로 '홈런을 절대로 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당연히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겠지요. 홈런을 치려면 마음을 비워야 해요. 홈런에 대한 생각 자체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배트를 휘둘러야 하지요.

 

 창의적 문제 해결이 어려운 것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놓인 상황을 다시 생각하고, 문제를 만든 사람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문제를 엮으로 추적해 그 근본을 찾는다면 의외로 쉽게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린답니다. 이 방법은 선불교에서만 쓰이는 것 아니냐고요?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 아인슈타인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것도 바로 이 방법을 통해서였어요. 아인슈타인의 명언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칠게요. "We can't solve problems by using the same kind of thinking we used when we created them(문제를 만들었던 때와 같은 사고로는 우리가 일으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