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문칼럼)

(청탁원고)내가 잊고 사는 것은 어머니였다 / 최주식

시인 최주식 2013. 8. 11. 23:02

 

내가 잊고 사는 것은 어머니였다 / 최주식

 

누구에게나 미처 챙기지 못해 잊고 사는 일이나 추억이 있다. 그 대상은 사람이나 어느 특정 지역, 또는 자신의 기호나 취향에 맞는 음식일 수도 있다. 때로는 한 그루 나무와 한 송이 꽃일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잊고 사는 것은 무었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뜻밖에도 아버지를 일찍 여의시고 시골에 사시는 어머니였다. 서울에 살다보면 바쁘고 번잡함이 많아 ‘효도’ 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명절이나 생일에만 뵐 뿐 평소에는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한채 어머니를 잊고 살고 있었다. 자식들은 어머니를 좋아한다. 어떤 어머니든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자식을 행복하게 해주려하니 싫어할 자식이 있을 턱이 없다. 그러면서도 자식은 어머니께 효도를 하지 못한다. 자신을 낳고 키워준 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방법에는 어떤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강제성이 있거나 현행법으로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니어서 소홀히 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사람의 도리, 자식의 도리를 생각한다면 그 어떤 처벌보다도 양심에 가책이 되고, 심적인 고통이 따른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의 어머니는 4남 1녀 자식의 정신적 지주이자 집안의 버팀목이다.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공부도 배우지 못하셨고 신산(辛酸)한 일생을 살고 계시는 분이다. 밖으로만 도는 가정에 무관심한 아버지를 만나 주렁주렁 치마폭에 매달린 자식들 굶기지는 말아야겠다는 목적에 가혹한 삶을 온몸으로 이겨내셨다. 나는 어릴적부터 보따리 장사를 시작으로 농사일, 품팔이, 집안일 등 고생스러운 일을 해내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랐다. 힘들면 눈물을 보이시며 당신의 인생을 한탄하던 순간도 여러번 목격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성장했는데도 불쌍한 어머니라고만 생각했지 금방 잊어버렸다. 내 삶을 살아내기도 벅차기에 정신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구차한 변명일 것이다. 어쩌면 어른 섬기기를 꺼리는 요즘 사회에 알게 모르게 길들여진 탓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현재 경기도 안성에서 막내 동생이 봉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 관행이나 관념적으로 본다면 장남인 내가 당연히 어머니를 봉양해야 하지만 막내 동생이 모시고 계신다. 그 어렵다는 어른 모시고 사는 것이 만만치 않을텐데 늘 정성을 다하는 동생 내외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해드린 것이 없어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프다. 다음 생에 내가 사람 몸을 받을 수 있다면 어머니의 어머니로 태어나 은혜를 갚아드리고 싶다. 또 다시 자식의 인연으로 태어난다면 그 은혜를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효도란 부모님은 물론 친인척이나 주변의 어르신께 예의를 갖추며 공경하는 것으로 우리 조상은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 왔다. 동방예의지국이란 이름을 가진 우리나라는 산업화의 고도성장기와 민주화 운동기, 21세기 핵가족 시대로 들어서면서 효도의 개념은 천길 절벽으로 추락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사회는 예의 범절이 부족하고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에 천륜도 인륜도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우선 나부터 예절과 윤리의 바탕이 되는 인간 심성이 메말라 황폐화되는 것 같아 부끄럽다.

 

효도는 격식을 차리기 위해 의무적으로 챙겨드리는 용돈이나 좋은 음식, 좋은 구경거리가 아니라 사람의 근원을 되돌아보는 일로서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 되돌아가는 것이다. 맹자께서도 자식 노릇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오불효자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첫째는 일을 게을리 하여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것, 둘째는 도박판에 빠지거나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것, 셋째는 돈이나 재물을 모아 자기 처자식만 좋게 해주고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것, 넷째는 즐거운 잔치나 여자에 빠져 부모의 치욕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 다섯째는 싸움질을 하여 부모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또한, 공자께서도 효도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말하나 공경하는 마음이 따라야만 진정한 효도라 하셨다.

 

불효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부모님은 자식이 어디에 있든 잘 살면 걱정이 없다 말씀 하시지만 전화 한 통에도 즐거워 하신다. 탐욕과 경쟁이 만연한 이 시대에 비록 삶이 여유롭지 않아도,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내려앉은 세월이 부끄럽지 않게 지금 당장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안부 전화라도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