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1인 가구'가 된 사람들을 위하여
知人이 읽어보라며 주고 간 책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타인 도움 없이 의식주 해결하는 게 '단독인'의 存立 밑바탕이라는데…
휴게소 1인 식탁 체험, 즐거운 기억… 새해엔 사람 부르는 '배려심' 넘치길
- 圓徹 해인사 스님
홀로 서 있는 가로등에 스위치를 올렸다. 희미한 불빛인지라 별빛을 방해하지 않는 소박한 모습이 더욱 정감을 자아낸다. 마당 가운데서 초저녁 밤하늘을 가만히 치어다본다. 저녁은 하루의 휴식이지만 12월은 한 해의 휴식이라 할 것이다. 더욱이 12월은 해가 빨리 떨어지고 어둠은 이내 찾아오며, 냉랭한 바깥 공기는 앞뜰에서 오래 서성일 수 없게 만든다. 방으로 들어와 책상 앞에 차분히 앉아 일년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곰곰이 되돌아본다. 굳이 휴식 타령을 해야 할 만큼 열심히 살았는지 반문도 해본다. 별로 두껍지도 않은 한문 원전 한 권을 몇 년째 끙끙대며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도 이제 거의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 겨울안거(冬安居) 동안 두문불출하면서 번역에만 매진하리라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그러고 보니 이 작업이 올해의 최고 업적(?)인 셈이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이미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저만치 떨어진 일차선 도로에는 어쩌다 지나가는 소형 트럭의 불빛이 허공을 가르다가 뒤꽁무니를 여운처럼 남기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세모의 도심지 나무들은 지금쯤 꼬마전구를 온몸에 칭칭 감고 여전히 밤늦도록 눈을 뜨고 있을 터이다. 그 나무에게 12월은 더 힘들고 분주하다. 도심에서 온 지인은 하룻밤 묵은 뒤 "연말이라 몸과 마음이 괜히 더 바빠진다"는 한마디를 남긴 채 표표히 떠났다. 읽어보라며 선물로 주고 간 책표지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제목은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였다. '어쩌다 1인 가구가 된 당신을 위한 책'이란 부제가 곁들어져 있다. 대부분의 희로애락이 핏줄에서 비롯된다고 했으니, 책을 펼치기도 전에 '혼자라서 느끼는 고독감도 힘들긴 하지만 관계가 주는 구속감은 그보다 더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수도승은 '싱글나라'에 사는 것이 당연하므로 독신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살지만 그래도 싱글은 싱글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저자와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다행히 자발적 독신에 대해선 후한 점수를 주었다. 필자를 굳이 분류한다면 '자발적 독신자' 그룹에 포함시켜야 할 것 같다. 그보다도 더 관건은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인 '단독인' 여부였다. 타인의 도움 없이 의식주를 해결하는 자립 능력이 가장 기본적인 존립 토대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입산하면서 오늘까지 늘 여럿이 어울려 살았으니 단독인 범주에 넣기엔 자격 미달이라 하겠다. 하지만 아무리 단독인 경지에 올랐다 할지라도 문밖을 나서면서 뒤따라오는 여러 가지 불편은 감수하라고 충고했다.
언젠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1인을 위한 식탁을 발견하고는 정말 기뻤다. 독서실처럼 칸막이를 만들어 10여개 자리를 배치해 놓았다. 이미 그 자리는 1인 가구 혹은 혼자 다니는 사람들이 반 이상 차지하고 있었다. 우동 한 그릇을 들고 빈자리에 앉아 정말 오랜만에 주변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한 끼를 해결했던 기억은 아직도 큰 즐거움으로 남아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휴게소 사장님은 혹시 단독인이 아닐까 하는 추측까지 자아낸다. 자기와 전혀 다른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배려한다는 것은 아무리 영업적 촉수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까닭이다. 장거리를 자주 다니는 편인데도 그 휴게소를 제외하고선 아직 1인 식탁을 만난 적이 없다. 또 그 도로를 이용할 때면 자연스럽게 그 휴게소에 들르게 된다. 배려심은 사람을 다시 부르기 마련이다.
어쨌거나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해를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운문(雲門·864~ 949) 선사는 지나간 과거보다는 다가올 미래를 더 염두에 두라고 한 것이리라.
"15일 이전의 일은 더 이상 묻지 않겠다. 이제 15일 이후의 일에 대하여 말해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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